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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입양됨 (3월 24일 안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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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식일학교 작성일17-12-19 11:30 조회1,55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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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4일 안식일 자메이카

 

하나님께 입양됨

 

래글런 웨이트

- 자메이카 경제의 약 4분의 1이 관광산업에 의존하고 있고, 매년 1백만 명 이상의 국제 관광객들이 자메이카를 방문하고 있습니다.

- 자메이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메이카식 방언인 영어를 기반으로 한 크리올어를 말하지만 카리브 해에서 영어를 사용하는 가장 큰 섬나라입니다.

- 자메이카는 1962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했지만 영연방의 일원으로 남아 있어서 엘리자베스 2세가 변함없는 국가 원수이자 여왕입니다.

- 자메이카 인구의 70%를 개신교인들이 차지하고 있고, 재림교회는 두 번째로 큰 교파입니다. 자메이카인 9명 중 한 명이 재림교인입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자메이카 킹스턴의 노숙자들을 위한 재림교회 센터인 선한 사마리아인 여관 (Good Samaritan Inn)의 관리자인 래글런 웨이트(50)의 이야기입니다.

 

저는 고아원에서 자랐고 6살 때 일요일을 지키는 가정에 입양되었습니다. 제가 17살 때 저를 입양한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면서 저는 먹을 음식이 거의 없었습니다. 생존할 방법을 찾기 위해 저는 필사적으로 친부모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고아원으로 돌아가 제 친어머니의 이름을 알아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그녀가 어디에 있는지 말해주려 하지 않았습니다.

다음으로 저는 가난한 사람들을 식별하고 돕는 책임을 맡고 있는 정부 기관인 지역 빈민 구제 공사에 갔습니다. 그곳에서 일하는 여성이 저에게 저의 어머니와 저의 다른 친가족들이 지원을 받는 명단에 올라 있다고 말했습니다. 심지어 그녀는 제 친형제가 제가 다니는 고등학교에 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녀는 사생활 침해 문제를 이유로 추가 정보를 제공하기는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제 형제에게 연락하여 그가 원한다면 저를 찾을 수 있게 해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어느 날 제가 축구 경기를 관람하고 있을 때 한 고등학교 선생님이 제 어깨를 쳤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네가 래글런이니? 내가 네 형이야.”

저는 너무 행복했습니다!

형인 칼은 저보다 7살 많았고 저를 집으로 데려가고 싶어 했습니다.

저는 몇 개 안 되는 소지품을 챙겨 새 집으로 옮겼습니다. 저는 처음으로 친어머니를 보았습니다. 그녀는 정신 질환을 앓고 있었고 저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마침내 그녀를 만나게 되어 기뻤습니다.

제 형은 재림교인이었고, 안식일에 저에게 함께 교회에 가자고 했습니다.

교인들은 저를 많이 도와주었습니다. 제가 잘 읽지 못하자, 그들은 장년 안식일 교과를 가지고 저에게 읽는 법과 쓰는 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들은 제가 삼육대학교의 여름 특강에 다닐 수 있게 도와주었고 그곳에서 저는 성경 공부를 가르치는 법을 배웠습니다.

22살에 저는 결혼하여 아이를 낳았고, 몬테고베이 관광 휴양지에 있는 주유소에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또한 저는 장로 안수를 받았고 교회 활동을 열심히 했습니다. 교회 지도자들이 저에게 한때 재림교회 교세가 강했었던 한 시골에 안식일학교 분교를 열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저희는 전도의 한 방법으로 안식일학교 교과책의 페이지를 찢어 전직 교인들에게 뿌렸습니다. 이것은 저희가 얼마나 가난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저희는 50명의 전직 교인들을 개심시켰습니다.

제 사생활은 제가 36살 때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이혼을 한 뒤 재혼했습니다. 한 교회 지도자와 다툰 뒤 저는 교회를 떠났습니다. 저는 안식일을 계속 지켰지만, 집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3년 전, 저는 자메이카의 수도 킹스턴으로 섬을 가로질러 이주했고, 동업자와 함께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제가 사업을 일으키려고 노력하는 동안 제 아내는 다른 마을에서 친척들과 함께 지냈습니다. 그러나 동업자와 제가 다투고 난 다음에 사업은 망했고, 저는 다른 직업을 찾기 위해 애를 썼습니다. 결국 저는 집을 잃었고, 자존심 때문에 아내와 친척들에게 도움을 청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3개월 동안 길거리에서 잠을 잤습니다.

어느 날, 저는 다른 노숙자와 어디서 씻고, 옷을 갈아입고, 음식을 좀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며 공원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는 저에게 말했습니다. “선한 사마리아인 여관에 가봐. 그러면 그들이 음식을 줄 거야.”

저는 말했습니다. “그곳에 가고 싶다!”

선한 사마리아인 여관의 사람들은 저에게 친절했고, 음식을 주고 옷을 갈아 입혀 주었습니다. 저는 곧 그 선한 사마리아인 여관이 재림교회 소유이고 교인들에 의해 운영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저는 선한 사마리아인 여관을 정기적으로 찾기 시작했고, 저도 무언가를 되돌려 줘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마당을 청소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다음 다시 재림교회에 다니기 시작했고 재침례를 받았습니다.

현재 50세인 저는 선한 사마리아인 여관의 관리자입니다. 저는 그곳에 개인 사무실과 숙소가 있습니다. 저는 제 두 번째 아내와 화해를 했습니다.

거리의 생활을 힘들었습니다. 하나님께 입양되고 재입양 되어 좋습니다.

201513째 안식일학교 헌금 가운데 일부가 자메이카 킹스턴의 선한 사마리아인 여관 수리와, 그 사업을 노숙자들을 위한 의료 및 치과 치료 무료 센터로까지 확장하는데 사용되었습니다.

선한 사마리아인 여관이 래글런과 같은 사람들을 전도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시는 여러분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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