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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과 3차 선교 여행(질문, 대답, 설명)09/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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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18-09-01 05:49 조회5,78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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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8일 안식일

일몰:오후 6시 51분

 

● 연구 범위 : 행 18:24~28, 행 19장, 행 20:7~12, 15~27, 고후 4:8~14, 행 21:1~15

● 기억절 :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

 

누가는 바울의 3차 여행을 다소 성급하게 시작된 것처럼 묘사한다. 바울은 자신의 선교 중심지인 안디옥에서 얼마 동안 머문 뒤에 다시 여정에 올라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땅을 차례로 다니며 모든 제자를 굳건하게”(행 18:23) 했다. 이 한 문장 속에서 그가 다닌 길은 무려 240㎞가 넘는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 여행의 초점이 에베소에 맞춰져 있었기 때문이다. 바울은 3차 여행 중 다른 도시에서보다 많은 시간을 에베소에 할애한다. 전도의 관점에서 에베소에서의 사역은 결실이 풍성했다. 바울이 전하는 복음은 소아시아 전 지역에 영향을 끼쳤다(행 19:10, 26). 아마도 이 기간에 바울의 동역자였던 에바브라의 노력으로(골 1:7, 몬 23) 골로새, 히에라볼리, 라오디게아 교회가 설립되었을 것이다(골 4:12~13).

우리는 이것이 사도행전에 기록된 바울의 여정 중에 그가 자유인으로 다니는 마지막 여행임을 주목해야 한다. 물론 누가는 나중에 죄수의 신분으로 로마를 향해 가는 바울의 여정도 소개할 것이다.

 

※ 학습 목표

깨닫기 : 기꺼이 자신을 바쳐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했던 바울의 삶을 이해한다.

느끼기 : 바울처럼 하나님을 섬기는 삶에서 인생의 목적을 깨닫기를 열망한다.

행하기 : 희생이 너무 크다고 생각되면 바울을 기억하며 온 힘을 다해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충성한다.

 

➋ 바울의 세 번째 선교 여행의 주된 목적지는 어디였습니까?(행 19:1)

※ 에베소.

➌ 바울은 에베소에서 어떻게 사역했으며 어떤 특별한 성과를 거두었습니까?(행 19:9, 10)

※ 2년간 사역했고 많은 사람들이 진리의 복음을 받아들였다.

➍ 에베소의 일화처럼 복음이 지역 사회에 강력한 감화를 끼칠 때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행 19:12~41)

※ 수용과 거절의 극과 극의 대립이 나타날 수 있다. 

➎ 그대는 에베소 교회 장로들과 작별하는 바울에게서 진정한 영적 지도자에게 있어야 할 어떤 면모를 보게 됩니까?(행 20:28~31)

※ 어떤 경우에서라도 사명을 다 하려고 하는 신앙의 모습을 보게 된다.

 

결론 : 바울의 3차 선교 여행은 그가 장차 받을 고난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줄기차게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며 죽음도 그를 단념시키지 못할 것이라고 고백했습니다.

 

 

9월 2일(일) 에베소 1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행 19:6).

 

행 18:24~28에 따르면 바울이 아직 에베소로 가고 있는 동안 아볼로라는 유대인 신자가 그곳에 도착한다. 그는 말을 잘 하며 성경에 능통한 사람이었다. 누가가 그에 대해 묘사한 것을 보면 그는 틀림없는 예수님의 제자였다. “그가 일찍이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행 18:25) 그는 요한의 침례 외에는 알지 못했다. 요한에게 침례를 받은 그는 예수님이 지상에 계시는 동안 그분에 대해 알게 되었지만 아마도 예수님의 고난과 오순절 사건이 있기 전에 유대 지역을 떠나 알렉산드리아로 돌아간 듯하다.

그래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그에게 복음에 대하여 더 자세히 알려주고자 했다. 아볼로는 성경을 통해서 예수님이 이스라엘의 메시아라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었지만(행 18:28) 예수님 이후에 기독교가 성장한 것처럼 그의 지식도 갱신될 필요가 있었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에베소 신자들과 더불어 아가야에 있는 교회들에 추천의 편지를 보내서(행 18:27) 그로 하여금 고린도에서 성공적인 사역을 펼치도록 도와주었다(고전 3:4~6, 4:6, 16:12).

 

1. 행 19:1~7을 읽어 보라. 바울이 에베소에 왔을 때 어떤 일이 있었는가?

[행19:1~7]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2 가로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가로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 3 바울이 가로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침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침례로라 4 바울이 가로되 요한이 회개의 침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5 저희가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으니 6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7 모두 열두 사람쯤 되니라.

 

답: 성령의 침례를 모르는 신자들을 만나서 예수님을 더 잘 배우고 예수님 이름으로 침례를 받게 했다. 그때 그들에게 성령께서 임하셨는데 12명쯤 되었다.

 

바울이 에베소에 도착했을 때에 만난 열두 명의 사람은 아볼로의 일화와 관련이 있다. 그들의 상황은 아볼로의 상황과 매우 비슷했다. 그들을 ‘제자’로 일컬었던 점(행 19:1)과 그들에게 물은 바울의 질문(행 19:2)으로 미루어 보아 그들은 이미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었다. 또한 그들의 대답에 따르면 그들은 아볼로처럼 이전에 침례 요한의 제자였다가 오순절의 경험 없이 예수님의 제자가 된 자들이었다. 그들은 하나님과 더 깊은 경험을 누릴 기회가 필요했다.

우리는 그들이 받은 새로운 침례를 이러한 독특한 상황에 비추어 이해해야 한다. 그들은 기독교의 다른 교단에서 개혁하거나 회심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단지 기독교의 본류에 융화되었을 뿐이다. 그들은 성령을 받고 방언으로 말하게 되었다. 그들은 이제 아볼로처럼 어디를 가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할 수 있는 능력으로 충만한 선교사들이 되었다.

 

<부가설명> 복음 진리를 배우고 지식적으로 알지만 경험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의의 도를 경험하지 못하면 복음에 대한 진리를 객관적 지식에 불과하게 된다. 바울은 말씀의 초보에 머물러 있으면서 의의 도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을 어린아이라고 했다.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히5:12~14) 아볼로와 또 12명의 신자들은 의의 말씀을 경험하는 경지에 도달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아볼로와 브리스가가 필요했고 바울이 필요했다. 그들이 다시 진리를 배우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으므로 성령께서 임하셨는데 이것은 의의 도를 경험하는 경지에 이르게 된 것을 나타낸다. 우리는 어떤가? 

 

교훈 : 예수님에 대해서는 알고 있지만 복음의 깊은 의미와 성령의 충만한 임재를 알지 못하는 자들을 위한 사역도 전도의 중요한 부분이다.

 

 

9월 3일(월) 에베소 2

 

“두 해 동안 이같이 하니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행 19:10).

 

에베소에서도 바울은 회당에서 먼저 복음을 전하는 자신의 관례를 따랐다. 그러나 반대가 일어나자 그는 새로운 신자들을 데리고 두란노라는 강당으로 자리를 옮겨서 2년 동안 매일 성경을 가르쳤다(행 19:8~10). 누가는 바울의 에베소 사역을 요약하면서 그 지역 전체가 상당히 복음화 되었다고 밝혔다(행 19:10, 26).

행 19:11~20을 보면 누가는 마술과 여러 미신이 성행하는 그 도시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난 몇 가지 이적을 소개한다. 하나님은 바울을 통해 사람들을 치유하실 수 있었다. 그의 몸에 닿은 손수건과 앞치마에도 치유의 능력이 있었다는 이야기(행 19:12)는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혈루증을 앓고 있던 여인을 치유하신 예수님을 떠올리게 한다(눅 8:44). 에베소 사람들이 미신에 젖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누가의 말처럼 놀라운 이적들을 행하셨다(행 19:11).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이해도에 따라 그들의 필요를 채우신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예이다.

에베소에서의 결실에 만족한 바울은 예루살렘에 가기로 결심했다(행 19:21). 누가는 그 이유를 밝히지 않았지만, 바울의 서신에 따르면 그는 예루살렘 교인들의 가난을 구제하기 위해 거둔 자금을 그곳에 가져가기를 원했다(롬 15:25~27, 고전 16:1~3). 처음 몇 해 동안 물품을 통용했던 유대 지역 신자들은 클라디우스 황제 시절에 닥친 극심한 가뭄으로 말미암아 가난하게 되었다. 비록 바울은 자신 앞에 여러 위험이 도사리고 있음을 알았지만(행 20:22~23, 롬 15:31) 그의 입장에서 구제를 바라는 그들의 요청(갈 2:10)은 자신의 사도권이 신임을 받고, 다국적으로 발전하는 교회의 연합을 강화시킬 수 있는 기회였다.

에베소 체류 기간의 말미에 일어난 반대의 실제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반대는 바울의 사역 때문에 큰 타격을 입은 이교 숭배와 관련이 있었다. 데메드리오의 진정한 동기는 경제적인 것이었지만 그는 그것을 신앙적인 문제로 위장했다. 에베소에 있는 아데미(아르테미스 또는 디아나) 신전은 고대 세계의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여겨졌을 정도로 그곳의 아데미 숭배는 특별했다.

 

<부가설명> 오늘은 교과에 질문이 없다. 에베소의 반대 이유에 대한 질문이 있으나 교과에 대답이 있다. 오늘의 기별의 핵심은 복음은 듣는 사람의 수준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신에 깊이 젖어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바울이 사용한 손수건이나 앞치마로 이적을 경험하게 하셔서 그 이적을 행하시는 분이 참으로 바울이 믿는 하나님 바울이 믿는 예수님, 바울이 믿는 성령께서 참으로 믿을 수 있고 믿어야 할 하나님이심을 증명해 주셨다. 그들의 수준에 알맞도록 복음을 체험하게 하신 것이다. 바울은 고전 9장에서 여러 경우와 사장에 따라 어떻게 하든지 복음이 그들에게 전해지고 체험되어질 수 있도록 성령의 인도를 따라 최선을 다 했다. 우리도 전도 대상의 사정과 수준에 따라 합당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성령의 지혜를 구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다양한 상태와 수준에 골고루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전달 방법을 연구하는 것은 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교훈 : 에베소에서 2년 동안 말씀으로 제자들을 양육한 바울의 사역은 이교 문화에 위기의식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그 지역의 복음화라는 놀라운 결과를 낳았다.

 

 

9월 4일(화) 드로아

 

“그 주간의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행 20:7).

 

소요가 발생한 뒤에(행 19:23~41) 바울은 에베소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그는 곧장 예루살렘으로 가는 대신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역을 경유하였다(행 20:1~3). 이 여정에는 일부 이방인 교회의 대표자들이 동행하였다(행 20:4).

 

1. 행 20:7~12을 읽어 보라. 이곳의 말씀을 인용해서 안식일이 일요일로 변경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오류가 있는가?

[행20:7~12] 안식 후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저희에게 강론할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8 우리의 모인 윗다락에 등불을 많이 켰는데 9 유두고라 하는 청년이 창에 걸터 앉았다가 깊이 졸더니 바울이 강론하기를 더 오래 하매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층누에서 떨어지거늘 일으켜 보니 죽었는지라 10 바울이 내려가서 그 위에 엎드려 그 몸을 안고 말하되 떠들지 말라 생명이 저에게 있다 하고 11 올라가 떡을 떼어 먹고 오랫동안 곧 날이 새기까지 이야기하고 떠나니라 12 사람들이 살아난 아이를 데리고 와서 위로를 적지 않게 받았더라.

 

답: 그날은 토요일 밤이었다. 안식후 첫날은 토요일 밤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바울이 밤중까지 지루하게 말했다는 것과 유두고가 조름에 깊이 빠져 떨어진 사실로 알 수 있다. 그날은 일요일 예배시간이 아니었다. 바울은 일요일 아침에 다음 지역으로 속히 떠났다. 

 

바울의 드로아 방문은 “그 주간의 첫날에”(행 20:7) 모인 집회로 마무리되었다. 그들이 모여 함께 나눈 식사는 아마도 성만찬을 언급하는 듯하다. 예루살렘 교회의 초기부터 성만찬은 경우에 종종 애찬으로 이어지기도 했다(행 2:42, 46). 드로아 집회에서 ‘잔’ 또는 기도에 대한 언급이 없다고 해서 이러한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 기사를 바울의 시대부터 이방인 교회들이 이미 안식일을 일요일로 대체했다는 증거로 언급하는 것은 문제이다.

누구든지 그러한 주장을 내세우려면 먼저 그 집회의 성격과 함께 그 집회가 열린 정확한 요일을 규명할 필요가 있다. 등불을 사용했고(행 20:8), 바울의 설교가 밤중까지 이어져(행 20:7), 날이 새기까지 계속되었다면(행 20:11), 유두고의 졸음을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행 20:9) 그것은 저녁 집회였다.

그것이 일요일 전날 저녁인지 일요일이 끝나는 저녁인지의 문제는 누가의 계산법이 일몰을 기준으로 하는 유대식이냐 아니면 일출을 기준으로 하는 로마식이냐에 따라 달라진다. 유대식이라면 토요일 저녁이고, 로마식이라면 일요일 저녁이다.

설령 그때가 일요일 저녁이라 할지라도 그 집회는 정규 모임이 아니라 다음 아침에 떠나는 바울을 환송하기 위한 특별 모임이었다(행 20:7~12). 따라서 일회적이고 예외적인 일화가 일요일 준수의 정당성을 입증하기에 충분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부가설명> 바울은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밤중까지 지루하게 말했다. 최근 번역 성경들 중에 토요일 밤이라고 번역한 성경들도 여럿이 있다. 성경대로 제7일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일요일을 주일이라고 하여 성수하는 사람들은 성경에서 조그마한 근거라도 찾으려고 그럴듯하다고 생각되는 구절들을 아전인수식으로 그렇게 설명한다. 교회가 성경에 확실한 근거가 없는 것을 교리로 가지고 있을 때 그런 교회는 성경이 말하는 순전한 교회가 아니다. 다시 말하면 100% 순전한 성경적 교회가 아니라는 말이다. 오늘날 많은 교회는 그렇게 교리를 가지고 있다. 성경에 확실한 근거가 없기 때문에 그들의 교리를 조금이라도 성경에 근거가 있다고 인용할 수 있는 구절들을 무리하게 인용한다.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아야 한다. 교과 저자가 말하듯이 그 집회가 로마식이든지 유대식이든지 낮 집회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밤에 한 집회이다. 안식후 첫날에 모였는데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라고 했으니 이것은 토요일 밤이 거의 확실하다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안식후 첫날이라는 개념은 전적으로 유대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오해하지 말자.

 

교훈 : 바울이 드로아를 떠나기 전에 열린 집회는 일요일 준수의 예가 아니라 바울을 환송하기 위한 특별 집회의 특성을 보여준다.

 

 

9월 5일(수) 밀레도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바울은 밀레도에 들러서 에베소 교회 장로들에게 고별 설교를 할 기회를 얻는다.

 

1. 행 20:15~27을 읽어 보라. 바울은 설교의 서론부에서 무엇을 강조했는가?

[행20:15~27] 거기서 떠나 이튿날 기오 앞에 오고 그 이튿날 사모에 들리고 또 그 다음 날 밀레도에 이르니라 16 바울이 아시아에서 지체치 않기 위하여 에베소를 지나 행선하기로 작정하였으니 이는 될 수 있는 대로 오순절 안에 예루살렘에 이르려고 급히 감이러라 17 바울이 밀레도에서 사람을 에베소로 보내어 교회 장로들을 청하니 18 오매 저희에게 말하되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너희 가운데서 어떻게 행한 것을 너희도 아는바니 19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를 인하여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20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꺼림이 없이 너희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21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거한 것이라 22 보라 이제 나는 심령에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저기서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알지 못하노라 23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24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25 보라 내가 너희 중에 왕래하며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였으나 지금은 너희가 다 내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할 줄 아노라 26 그러므로 오늘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니 27 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너희에게 전하였음이라.

 

답: 복음 전할 때에 있었던 사정을 말했다. 그런 어려움 중에서도 진리를 확실하게 전하였고 그 결과로 교회가 설립된 것을 말하였다.

 

바울은 이미 로마와 스페인에 가려는 새로운 여정을 계획했기 때문에(롬 15:22~29) 다시는 아시아에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에베소에 있었던 기간에 거둔 일종의 성과 보고로 설교를 시작했다. 그러나 그 보고는 과거 즉 그가 에베소에서 보여준 삶의 방식보다는 미래를 겨냥했다. 왜냐하면 그는 예루살렘에서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길지 염려했기 때문이다.

바울의 염려는 근거가 없지 않았다. 예루살렘 교회는 적대적이지는 않을지라도 회의적인 시선으로 그를 보았다. 그것은 박해자였던 그의 전력(前歷)과 할례를 지지하지 않는 그의 복음 탓이었다(행 21:20~26). 유대교 지도자들의 입장에서 그는 다름 아닌 반역자요 신앙 전통을 저버린 배교자였다(행 23:1~2). 1세기 중반, 로마의 실정으로 인해 유대에는 혁명적이고 민족주의적인 이상들이 들끓었다. 이러한 기류는 유대 사회의 각 소집단에게까지 영향을 미쳤고 거기에는 교회도 포함되었다. 그런 분위기라면 이방인들 중에서 활동하는 이전의 바리새인에게 악평이 쏟아지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바울에게는 더 많은 근심거리가 있었다. 행 20:28~31을 보면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지도자들이 거짓 교사들의 문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바울은 그들을 일컬어 양떼를 그릇된 길로 인도하는 흉악한 이리로 비유했다. 초기 교회의 시대에도 교회 내부에 거짓 교사라는 위험 요소가 실존했다. 솔로몬의 말처럼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전 1:9)다. 기독교 역사를 보면 거짓 교사들이 교회에 끼친 피해는 막대하다. 이 문제는 끝까지 계속될 것이다(딤후 4:3). 물론 바울에게 마음의 짐과 근심이 많았지만 그의 믿음과 성실함은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부가설명> 바울이 활동하던 시대, 베드로가 증거 하던 시대, 요한이 사역하던 시대에 이미 이단들이 교회 안에 있었다. 역사가 진행되면서 교회 안에 비성경적 사상이 공공연히 들어오면서 교회는 세속화 되어 갔고 마침내 정치권력을 거머쥐었다. 그래서 교회가 세계에 군림하는 시대를 열었다. 그 기세는 오늘까지 이어진다. 성경을 절대 무오 한 유일의 신앙의 근거로 믿는 재림성도들은 그럴듯한 주장에 대하여 면밀하고 치밀하게 검토하는 정성을 들여야 할 필요가 있다. 재림교회 내부에도 교회가 성경에 근거하여 교회가 가르치는 중요한 진리에 대하여 엉뚱한 해석과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은 재림교회의 신자들이라고 말할 수 없다. 초기교회에 사도들이 살아 있는 기간에 이단이 교회 내부에 활동했으니 지금은 그런 일이 훨씬 강하고 빈번하게 일어날 것이다. 예수께서 말세 징조를 묻는 제자들에게 사람에게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당부하셨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사랑하는 가족이라도 성경과 일치하지 않는 이야기를 하면 단호해야 한다. 그렇기 위하여 우리는 진리를 옳게 분별하는 지혜를 구해야 할 것이다.

 

교훈 : 바울은 밀레도에서 에베소 교회 장로들과 작별하면서 자신 앞에 놓인 위험보다도 교회 안에 존재하는 거짓 교사들의 위험에 대해 더 염려하였다.

 

 

9월 6일(목) 두로와 가이사랴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행 21:13).

 

누가는 밀레도를 떠난 뒤의 여정을 비교적 자세하게 기록한다.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사도는 배들이 하역하는 페니키아 해안의 항구도시 두로에서 일주일을 보냈다(행 21:1~6). 그런데 그곳에 있는 동안 신자들은 그에게 예루살렘에 가지 말라고 만류하였다. 신자들이 성령의 지도를 받아 바울에게 가지 말라고 경고한 행위가 사도의 결심과 꼭 모순되는 것은 아니다. 행 19:21에 나오는 ‘에테도 엔 토 프뉴마티’라는 구절은 그가 스스로 결정했다기보다는 성령에 따라 결심했다는 의미로 읽혀야 한다. 즉 성령은 두로의 신자들에게 바울 앞에 놓인 위험들을 보여주셨다. 그런데 그들이 인간적인 동기에서 그에게 계획대로 진행하지 말라고 강권했던 것이다. 바울도 예루살렘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지 못했다(행 20:22~23).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다고 항상 모든 것이 명확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바울과 같은 인물에게도 마찬가지였다.

 

1. 행 21:10~14을 읽어 보라. 가이사랴에 있을 때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바울의 여정에 관한 어떤 암시가 있었는가?

[행21:10~14] 여러 날 있더니 한 선지자 아가보라 하는 이가 유대로부터 내려와 11 우리에게 와서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말하기를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 주리라 하거늘 12 우리가 그 말을 듣고 그 곳 사람들로 더불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 권하니 13 바울이 대답하되 너희가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14 저가 권함을 받지 아니하므로 우리가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하고 그쳤노라.

 

답: 선지자 아가보를 통하여 바울이 결박되고 이방인의 손에 넘겨질 것을 예언했다. 바울이 그것을 알고도 사명을 위하여 충성하기로 결정했다.

 

아가보는 행 11:27~30에서 가뭄 때문에 이미 소개된 예루살렘의 예언자였다. 구약의 어떤 선지자들처럼 그는 행위로 기별을 전달했다(예, 사 20:1~6, 렘 13:1~10). 그것은 바울이 예루살렘에 도착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그리고 그의 원수들이 그를 어떻게 이방인(로마인)들에게 넘겨줄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예증의 역할을 했다.

바울과 함께 있던 자들은 아가보의 기별을 예언이 아닌 경고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라도 예루살렘에 가지 말라고 그를 설득하려고 했다. 바울은 그들의 반응에 큰 감동을 받았지만 목숨을 잃더라도 사명을 완수하리라고 결심했다. 그에게는 복음의 통일성과 교회의 연합이 자신의 안위나 이익보다 더 중요했다.

 

<부가설명> 예언과 경고는 때때로 혼동할 수 있다. 아가보의 말은 예언이었다. 동시에 경고로 들을 수도 있었다. 주위의 사람들은 경고로 들었고 바울은 예언으로 들었다. 바울도 그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가 예루살렘에 가는 것도 성령의 인도라고 확신하였다. 성령께서는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가도록 이끄셨지만 또한 거기서 당할 고난도 알게 하셨다. 바울이 주위의 극진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으로 가는 결심을 바꾸지 않은 것은 바울 자신의 사명을 이루려는 열망도 있지만 동시에 주위 사람들에게 주님께 충성하는 신자의 삶의 모습을 알려주는 결정도 되었다. 그리스도인들이 진리를 위해 충성하는 것이 어떤 태도인지 잘 드러낸 모습이 아닌가? 다만 우리의 태도가 진정으로 성경에 근거한 신앙으로 말미암은 것인지 잘 검토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남은 자손으로서의 진리교회는 역사적 앞날에 환난과 핍박이 파도처럼 닥친다는 것을 예언으로 잘 알고 있다. 그렇다고 진리의 길을 멈추거나 궤도를 바꿀 수 있겠는가? 바울의 모습은 이런 것을 가르쳐주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교훈 : 두로와 가이사랴의 신자들은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바울의 여정을 만류했지만 바울은 죽음을 각오하고 사명을 완수하고자 했다.

 

 

9월 7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복음 전도에 따른 성공은 유대인들의 분노를 새로이 일으켰다. 각 지방으로부터 새로운 교리의 전파에 대한 보고가 들어오고 있었는데, 거기에 따르면 유대인들은 의문의 율법의 의식을 준수하지 않아도 되며 이방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 유대인과 함께 동등한 특권들을 받는다고 하였다. 바울은 고린도에서 전도할 때 그의 편지들에서 그처럼 힘 있게 주장한 동일한 논증을 제시하였다.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할례파나 무할례파나…차별이 있을 수 없’(골 3:11)다는 그의 힘 있는 진술을 그의 원수들은 대담한 참람의 말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의 음성을 침묵시키기로 결심하였다”(사도행적, 390).

“심지어 그는 자신의 믿음의 형제의 동정과 지지까지도 의지할 수 없었다. 그의 발자국을 그처럼 가까이에서 추적하던 회심하지 않은 유대인들은 그와 그의 사업에 관하여 말과 편지로써 예루살렘에 가장 나쁜 소문을 유포시키기에 지체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사도들과 장로들 중에서까지도 어떤 이들은 이 소문을 사실로 받아들여 그것들을 반박하고자 시도하지도 아니하였으며 그와 연합하고자 하지도 아니하였다”(사도행적, 398).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바울이 에베소에서 만난 열두 명은 이전에 침례 요한의 제자였다가 예수님의 제자가 된 사람들이었습니다(행 19:1~7). 다른 교단에서 이미 침례를 받았지만 재림신앙에 연합한 사람에게 재침례를 요구할 때 이 성경절들을 인용하는 것이 맞을까요? 아볼로가 재침례를 받지 않았다는 사실에는 어떤 중요한 의미가 있을까요?

※ 침례의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도록 가르친 후에 그의 결정을 존중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➋ 바울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동족들로부터 거부를 당했습니다. 심지어 유대인 신자들조차 그가 ‘지계표’를 옮겼다고 생각하며 그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았습니다. 많은 이교도들도 그가 전하는 복음을 혐오했습니다. 그런데 왜 바울은 이 모든 반대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전했을까요? 그의 이야기로부터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 그가 만난 예수께서 그의 복음이 예수님이 가르친 복음이라는 보증이 되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는 성경이 가르치는 복음을 성경대로 증거 하는 증인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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