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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과 초기 교회가 경험한 연합(질문, 대답, 설명)11/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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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18-10-26 18:29 조회5,32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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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3일 안식일

일몰:오후 5시 32분

 

● 연구 범위 : 행 1:12~14, 2:5~13, 계 14:12, 행 2:42~47, 4:32~37, 5:1~11, 고후 9:8~15

 

● 기억절 :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행 2:42).

 

교회의 연합은 진리이신 예수님 안에서 영적인 경험을 공유할 때 생기는 결과이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단단한 친교의 결합은 공동의 영적인 여정과 경험 안에서 구축된다. 초기 재림신자들은 밀러주의 재림운동을 통해서 그와 같은 경험을 나눴다. 1844년을 중심으로 한 그들의 공동의 경험은 실망의 이유를 찾으려고 노력할 때 그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어주었다. 이러한 경험의 결과로 재림 전 심판의 진리와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및 그 안에 수반된 모든 것들이 등장했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뒤에 제자들이 나눴던 경험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 그리고 친교가 다양한 배경을 가진 제자들 속에서 연합과 화합을 이루는 데 어떤 능력을 발휘하는지 증언한다.

“나는 친교가 예배에서 특별히 중요한 요소라고 주장하고 싶다.… 그리스도인이 예수 그리스도뿐 아니라 다른 신자들과 영적인 유대를 실현하기 위한 다른 대안은 없다.… 예수님은 한 영혼을 인도하신 후에 항상 그를 그분의 몸인 교회의 다른 신자들과 연합하게 하셨다.”—Robert G. Rayburn, O Come, Let Us Worship (Grand Rapids: Baker Book House, 1980), p. 91.

 

※ 학습 목표

깨닫기 : 연합은 성령께서 함께하시는 영적인 여정을 공유할 때 구축됨을 이해한다.

느끼기 : 하나님께 대한 헌신이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이어짐을 경험한다.

행하기 : 신자들과의 친교를 증진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➋ 초기 교회 신자들이 오순절 전후에 함께했던 영적인 활동들은 연합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요?

※ 성령의 역사로 모두 한 마음이 되어 주님의 사업에 매진하게 했다. 

➌ 오순절에 나타난 방언의 은사는 역사적으로 어떤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까?

※ 예수님의 사상과 정신으로 연합시켰다. 바벨탑에서 분열을 겪었으나 예수 안엣 하나가 되는 경험으로 이끌었다. 

➍ 개인의 탐심과 이기심은 교회의 연합에 어떤 중대한 악영향을 끼칠까요?

※ 교회를 분열시키고 이기심에 노출시킨다. 

➎ 초기 교회가 보여준 연합의 모본을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행 2:46~47)

※ 오늘날 교회도 말씀을 배우고 깨달아서 성령으로 하나 되는 경험에 이르러야 한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

 

결론 : 초기 교회의 신자들은 성령의 능력을 통해서 함께 시간을 보내고 하나님께 대한 헌신과 서로에 대한 사랑을 공유함으로써 연합과 사랑의 정신을 나타냈습니다.

 

 

10월 28일(일) 준비 기간

 

십자가 사건 전에 제자들과 마지막 시간을 보내시면서 예수님은 그들을 홀로 버려두지 않겠다고 약속하셨다. 다른 보혜사인 성령께서 그들의 사역에 그들과 동행하도록 파견되실 것이었다. 성령께서는 그들로 하여금 예수님이 하신 말씀과 일들을 기억나게 하시고(요 14:26), 더 많은 진리를 발견할 수 있도록 그들을 인도하실 것이었다(요 16:13). 승천하시는 날 예수님은 그 약속을 재확인하셨다.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침례를 받으리라…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행 1:5, 8). 제자들이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그분의 증인이 될 수 있도록 성령의 권능이 부여될 것이었다(행 1:8).

 

1. 행 1:12~14을 읽어 보라. 열흘의 기간 동안 제자들은 무엇을 했는가?

[행1:12~14] 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와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 13 들어가 저희 유하는 다락에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14 여자들과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로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

 

답: 마음을 같이 하여 전혀 기도에 힘쓴 기간이었다. 

 

이 열흘은 제자들이 예수님의 행적과 가르침, 이적들에 대한 그들의 기억을 나누는 일종의 수련회이자 영적인 준비 기간으로 볼 수 있다. 그들은 “더불어 마음을 같이 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행 1:14)썼다.

“제자들은 약속이 성취되기를 기다리면서, 참된 회개로 그들의 마음을 겸비하게 하고 그들의 불신을 자복하였다. 그리스도께서 운명하시기 전에 그들에게 하신 말씀을 상기하였을 때 그들은 그 의미를 더욱 충분히 깨닫게 되었다. 기억에서 사라졌던 진리들이 그들의 마음에 다시 떠올랐으며, 그들은 이것들을 서로에게 되풀이하였다. 그들은 구주를 오해한 자신들을 책하였다.… 그들이 그분의 순결하고 거룩한 생애를 명상할 때, 만일 그들의 생애로 그리스도의 품성의 아름다움을 증언할 수만 있다면 너무 힘들어서 하지 못할 수고나 너무 커서 못할 희생이 없다는 것을 느꼈다. 그들이 과거의 삼 년을 다시 살 수만 있다면, 그들은 얼마나 다르게 행동할 것인가를 생각하였다.…불화와 최상권을 잡으려는 모든 욕망을 버리고, 그들은 그리스도인 교제를 통하여 모두 친밀해졌다”(사도행적, 36~37).

 

<부가설명>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을 확실히 확인하고 경험하게 되었을 때 제자들의 태도는 달라졌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승천하실 때까지 40일을 제자들과 함께 하면서 하늘나라 일을 가르치셨다.(행1:1~3) 예수님의 왕국이 이 세상에 유다를 중심해서 세계를 제패하는 그런 나라가 아니라 영원한 새 하늘과 새 땅을 이루는 것임을 깨닫게 하신 것이다. 예수께서 승천하는 현장에서 승천하시는 것을 그들의 눈으로 목도하고 확인했을 때 그들의 감회가 어떠했겠는가! 그들은 예수님이 구름 속으로 들어가서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 흰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에게 예수께서 다시 오실 것이라고 증언했다. 그들은 천사들이었다. 기쁨으로 돌아와서 아마도 마가의 다락방에 120명 정도가 함께 모였다. 마음을 같이 하여 전적으로 기도하면서 예수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렸다. 그 자리에는 예수님의 형제들도 있었다. 그들은 예수님 부활하시기 전까지 예수를 믿지 않았다.(요7:5) 예수께서는 부활하신 후에 특별히 형제들의 맏이인 야고보에게 나타나셨다.(고전15:7) 그후 예수의 형제들은 다 예수님을 메시아요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믿게 되었다. 그들이 이 다락방 집회에 함께 한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힘을 더했을 것이다. 그들은 마음을 같이하여 기도하였다. 진정한 연합의 정신으로 주임께 굴복하고 성령의 강림하고 능력을 구하였다. 마침내 오순절에 성령께서 강림하셨다. 

 

교훈 :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에 제자들은 예수님의 약속의 성취를 바라며 진실한 회개와 기도로 서로 연합하는 시간을 통해서 영적으로 준비되었다.

 

 

10월 29일(월) 바벨에서 오순절까지

 

예수님의 승천 이후 영적인 준비 기간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오순절이 되었다. 그날 모두 한 마음으로 한 곳에 모여 있는 그들에게 성령이 부어졌다(행 2:1).

구약시대에 오순절(그리스어로 펜테코스테-오십 일째 날)은 모든 이스라엘 남성이 의무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3대 절기 중 두 번째 절기였다. 이 절기에 히브리인들은 감사의 제물로 여름 수확물 중 첫 소산을 하나님께 바쳤다.

예수님 시대에 오순절은 시내산에서 율법을 주신 역사(출 19:1)를 기념하는 의식도 포함했을 가능성이 있다. 여기서 우리는 회개하는 모든 자들에게 하나님의 율법을 어긴 죄를 용서해 주시는 예수님의 죽음에 관한 기독교의 기별 속에서 하나님의 율법이 여전히 중요함을 볼 수 있다. 그래서 마지막 때에 관한 핵심 성경절들은 율법과 복음을 동시에 강조하고 있다.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계 14:12).

모세가 십계명을 받았던 시내산에서처럼(출 19:16~25, 히 12:18), 오순절에도 여러 가지 특이한 현상들이 발생했다.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행 2:2~4).

 

1. 행 2:5~13을 읽어 보라. 이 놀라운 사건에는 어떤 중대한 의미가 있는가?

[행2:5~13] 그 때에 경건한 유대인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우거하더니 6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의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7 다 놀라 기이히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8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의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찜이뇨 9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람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가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10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11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12 다 놀라며 의혹하여 서로 가로되 이 어찐 일이냐 하며 13 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가로되 저희가 새 술이 취하였다 하더라.

 

답: 성령께서 제자들에게 여러 나라 말을 할 수 있는 방언의 은사를 주셨다. 거기에는 15개 국가에 흩어져 사는 사람들이 모였고 그들은 각각 그들이 사는 지역의 언어를 사용했는데 성령의 역사로 다 알아들어서 한 사상으로 회개하기에 이르렀다. 

 

오순절은 하나님의 관대하심에 대한 감사와 기쁨의 절기가 되어야 했다. 아마도 그런 이유 때문에 제자들이 술에 취했다는 오해가 생긴 듯 보인다(행 2:13~15). 하나님의 권능은 특히 여러 언어로 말하고 듣는 이적으로 나타났다. 로마 제국 전역에서 예루살렘으로 온 유대인들은 그들이 거주하는 지역의 언어로 메시아이신 예수님에 관한 기별을 들었다.

오순절은 바벨탑 사건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인간 가족의 확산과 민족들의 발생을 독특한 방법으로 되돌리는 역할을 했다. 그 은혜의 이적으로 말미암아 인류는 다시 하나가 되기 시작했다. 세계적인 범위에서 하나님의 교회가 연합한다는 것은 바벨에서 잃었던 연합을 회복한다는 의미에서 하나님 나라의 속성이 무엇인지 증언한다.

 

<부가설명> 성령께서는 120명 이상 되는 제자들에게 각각 다른 방언으로 말하게 하셔서 청중들이 각각 자기 나라 말을 하는 사도들의 설교를 자기나라 말로 듣게 하셨다. 그리하여 그 여러 지방 사람들이 같은 사상을 그들의 말로 듣고 예수님께 굴복하여 회개하고 침례 받는 것으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심을 경험하였다. 그것은 국가의 일치가 아니라 한 마음이 되는 마음의 일치였다. 오늘 제목대로 바벨탑에서 분열되었던 사상이 오순절에 성령 안에서 하나 되는 경험을 했고 오늘날 같은 성령의 역사로 온 세계에 설립된 교회가 다 예수 사상으로 일치되도록 하셨다. 그러나 역사가 흐르면서 사탄의 방해로 오늘날 교회는 사분오열이 되었다. 계시록은 이렇게 된 현상을 다시 바벨론이라고 정의하였다.(계17:5) 그래서 천사는 바벨론에서 나오라는 기별을 전하였다. 우리 재림교회는 바벨론에서 나온 사상으로 성경적 진리를 바르게 깨달아 지키는 교회이다. 그러므로 온전한 성경사상과 교리로 일치해서 이 분열의 시대에 참된 연합으로 진리를 증거 해야 할 것이다.

 

교훈 : 하나님은 오순절에 성령의 은사를 받은 제자들을 통해 바벨탑 사건 이후 여러 언어로 갈라진 인류를 복음으로 연합시키기 시작하셨다.

 

 

10월 30일(화) 친교의 연합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행 2:38).

 

회개하고 구원을 받으라는 베드로의 설교와 호소에 대한 반응으로 약 3천 명의 사람들이 결심하고 예수님을 메시아이자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약속의 성취로 받아들였다. 하나님은 그들 모두의 마음속에서 일하셨다. 많은 이가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어쩌면 그를 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으로 예루살렘까지 여행했을지도 모른다. 그들 중에는 예수님을 보고 구원의 기별을 들었지만 그분을 따르기로 결심하지는 못한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오순절에 하나님은 제자들의 삶 속에 기적적인 방법으로 개입하셔서 그들을 부활하신 예수님의 증인으로 사용하셨다. 이제 그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사람들이 죄 사함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행 2:38).

 

1. 행 2:42~47을 읽어 보라. 예수님을 따랐던 자들은 초기 신자들의 공동체에서 어떤 활동들을 했는가? 무엇이 이토록 놀라운 친교의 연합을 이루게 했는가?

[행2:42~47]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43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46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답: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아서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는 진실한 친교의 생활을 했다. 말씀을 배우고 실천하게 하는 성령의 역사이다.  

 

놀랍게도 새로운 신자들의 공동체가 처음 전개한 활동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배우는 것이었다. 성경의 가르침은 새로운 신자들의 영적인 성장을 촉진시키는 중요한 요소이다. 예수님도 사도들에게 새로운 제자들로 하여금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 28:20)고 분부하셨다. 이 새로운 공동체는 사도들로부터 함께 예수님에 관해 배웠다. 그들은 예수님의 생애와 사역에 대해 배웠다. 그분의 교훈, 비유, 설교, 이적 등 모든 것이 선지자들이 기록한 구약 성경의 성취로 설명되었다.

그들은 또한 기도하며 함께 떡을 뗐다. 이 식사가 직접적으로 성만찬을 의미하는지 아니면 행 2:46이 암시하듯이 단순한 애찬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친교에 대한 이런 언급은 이 새로운 공동체가 여전히 헌신과 예배의 중심지였던 성전과 개인 가정에서 빈번히 그리고 정규적으로 함께 시간을 보냈음을 뜻한다. 그들은 사생활을 공유하며 함께 먹고 기도했다.

기도는 공동체 신앙의 핵심적인 요소이며 영적인 성장에 필수적이다. 이 새로운 공동체는 함께 예배하였다. 이런 활동은 변함없이 이행되었다. 이렇듯 변함없는 친교는 신자들로 하여금 예루살렘에 사는 다른 사람들과도 좋은 관계를 맺도록 유도했다. 그들은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행 2:47)았다. 그들의 삶 속에 임하신 성령의 사역은 그들 주변의 사람들에게 강력한 인상을 남겼을 뿐 아니라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진리를 입증하는 효과적인 증거로 작용했다.

 

<부가설명> 성경의 종교와 신앙은 친교가 아주 중요한 것이라고 가르친다.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요일1:3) ‘사귐’이라는 말은 ‘코이노니아’이다. 아버지와 아들과 함께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시는 역사(役事)로 친교가 이루어지고 진행된다. 이것은 서로 사랑하는 것을 훈련하고 실천하게 하는 것이다. 창조주께서는 그의 형상대로 창조한 피조물들과 사랑의 친교를 원하신다. 교회가 형성되고 교인들 사이에 하나님의 사랑으로 친교가 이루어지면 예수 이름으로 성령의 역사로 사상과 언어와 삶의 형태가 일치된 모습으로 드러나게 된다. 그들의 말은 예수님을 높이는 것이고 그들의 행동은 이웃을 사랑하며 봉사하는 것이고 어떻게 하든지 사람들을 예수께로 이끌려고 하는 삶이 드러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되어서 지체로서 서로 위하며 머리되시는 예수님의 뜻을 이루게 된다. 몸은 지체가 연합하여 한 목적을 위하여 활동하지 않는가. 성도들의 연합이 이와 같은 것이다.

 

교훈 : 초기 교회의 새로운 공동체는 사도의 가르침과 예배와 영적인 친교로 연합했고 칭송을 받을 만큼 이웃과 좋은 관계를 맺으며 복음의 진실성을 입증했다.

 

 

10월 31일(수) 너그러움과 탐심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행 5:4).

 

누가는 오순절 직후 신자들이 경험한 친교의 자연적인 결과 중 하나는 상호지원이었다고 말한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행 2:44~45).

물건의 통용은 공동체 생활의 의무가 아니라 친교를 통해 그들이 경험한 사랑의 자발적인 결과였다. 그것은 또한 그들이 이루고 있던 연합의 구체적인 표현 방식이었다. 이러한 상호지원은 얼마 동안 계속되었다. 사도행전 4~5장은 이에 대해 더 상세한 정보를 제공한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이것은 신약성경의 다른 곳에서도 등장하는 주제이다.

이 무렵에 바나바가 처음으로 등장한다. 그는 땅을 소유한 부자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자신의 재산을 팔아서 사도들에게 돈을 가져다주었다(행 4:36~37). 바나바는 따라야 할 모본으로 그려진다.

 

1. 행 4:32~37, 5:1~11을 읽어 보라. 바나바의 행동과 태도를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그것들과 비교해 보라. 이 부부의 잘못은 무엇이었는가?

[행4:32~37]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33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얻어 34 그 중에 핍절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35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저희가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줌이러라 36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인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 (번역하면 권위자) 라 하니 37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

[행5:1~11]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 아내 삽비라로 더불어 소유를 팔아 2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를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3 베드로가 가로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4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임의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 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5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 6 젊은 사람들이 일어나 시신을 싸서 메고 나가 장사하니라 7 세 시간쯤 지나 그 아내가 그 생긴 일을 알지 못하고 들어오니 8 베드로가 가로되 그 땅 판 값이 이것뿐이냐 내게 말하라 하니 가로되 예 이뿐이로라 9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어찌 함께 꾀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 보라 네 남편을 장사하고 오는 사람들의 발이 문 앞에 이르렀으니 또 너를 메어 내가리라 한 대 10 곧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러져 혼이 떠나는지라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 죽은 것을 보고 메어다가 그 남편 곁에 장사하니 11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

 

답: 바나바는 진심으로 자기 소유를 교회에 바쳤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바나바가 받은 명성과 칭찬을 원했다. 그들은 교회를 위하여 밭을 바친 것이기보다는 자기들의 욕망을 위하여 그런 행동을 하면서 정직하게 않게 했다.

 

성령께 대한 노골적인 거짓의 죄 외에도 그들은 탐심과 탐욕을 나타냈다. 이기심과 탐심만큼 형제자매의 친교와 사랑을 빨리 붕괴시키는 죄도 없다. 바나바가 초기 교회에서 친교의 정신에 대하여 긍정적인 모본을 보였다면,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그 반대였다. 누가는 공동체 안에 존재하는 부덕한 이들의 이야기를 가감 없이 전한다.

십계명(출 20:1~17) 중 탐심에 관한 마지막 계명은 다른 계명들과 같지 않다. 다른 계명들은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가시적으로 범할 수 있는 행위에 대해 말하는 반면 마지막 계명은 마음속에 감춰진 죄에 관한 것이다. 탐심의 죄는 어떤 행위라기보다 일종의 마음의 움직임이다. 탐심과 그것의 짝인 이기심은 보이는 죄가 아니라 죄 많은 인간의 본질적인 상태이다.

그것은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그랬던 것처럼 이기적인 행동으로 나타날 때에만 가시적으로 표출된다. 어떤 의미에서 마지막 계명은 다른 모든 계명이 정죄하는 행동들의 바닥에 존재하는 불의의 근원을 드러낸다. 그들의 탐심은 사탄의 감화력에 자신들을 노출시켰고 하나님께 거짓을 말하게 했다. 이는 탐심으로 인하여 유다가 선택했던 행동과 다르지 않다.

 

<부가설명>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주실 때에 마지막 계명에 사람의 마음의 실상을 스스로 깨닫게 하는 조문을 두셨다. 사람이 보기에 선한 행동이 그 동기가 추악한 것일 수도 있다. 사람은 드러나는 것, 즉 보이는 것으로 판단한다. 마음의 숨은 동기가 어떤 것인지 사람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보기에 선하지만 숨은 동기가 사악한 사건들이 많이 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자기들을 높이려는 마음을 속에 감추고 바나바 흉내를 낸 것이다. 교회 안에 이런 일이 있으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대신에 인간의 탐욕이 설치는 자리가 될 수 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예수 이름으로 성령의 역사라는 미명으로 사람의 욕망을 채우려고 하는 것이다. 성령께서는 초기 교회에 이런 현상을 애초부터 차단하셨다. 오늘날 교회가 이 사건의 진정한 의미를 올바르게 알아야 할 것이다. 예수께서는 성전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고 하셨다. 그런데도 나아가서 강도의 소굴이 되게 하였다. 그것이 예수님 당시의 유대 종교지도자들의 모습이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이런 정신을 교회에 끌어들이려는 사단의 도구가 된 것이다. 

 

교훈 : 탐심과 이기심은 영적인 공동체를 파괴하는 심각한 죄이다. 그것은 타락한 마음의 상태로서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이기적인 행동을 통해서 드러난다.

 

 

11월 1일(목) 가난한 자들을 기억하라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9:8).

 

개인의 재원(財源)을 공유한다는 것은 초기 교회에 존재했던 연합의 가시적인 표현이었다. 사도행전 초반부에 서술된 관용의 태도는 나중에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세운 교회들로 하여금 예루살렘의 가난한 자들을 위해 기부하도록 권유했을 때도 이어졌다(행 11:27~30, 갈 2:10, 롬 15:26, 고전 16:1~4 참고). 그 같은 선물은 주로 이방인 신자들로 구성된 교회들이 신앙 유산을 나눠준 예루살렘의 유대인 형제자매를 사랑하고 돌본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구체적인 표현 방법이 되었다. 문화와 민족적인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루고 동일한 복음을 함께 나누었다. 가난한 자들에게 행하는 이러한 나눔은 교회 내에 이미 존재했던 연합을 드러낼 뿐 아니라 그러한 연합을 강화시켰다.

 

1. 고후 9:8~15을 읽어 보라.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나타낸 너그러움의 결과가 무엇이 될 것이라고 말하는가?

[고후9:8~15]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9 기록한 바 저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10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 11 너희가 모든 일에 부요하여 너그럽게 연보를 함은 저희로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는 것이라 12 이 봉사의 직무가 성도들의 부족한 것만 보충할 뿐 아니라 사람들의 하나님께 드리는 많은 감사를 인하여 넘쳤느니라 13 이 직무로 증거를 삼아 너희의 그리스도의 복음을 진실히 믿고 복종하는 것과 저희와 모든 사람을 섬기는 너희의 후한 연보를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14 또 저희가 너희를 위하여 간구하며 하나님의 너희에게 주신 지극한 은혜를 인하여 너희를 사모하느니라 15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를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답: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고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서로 사모하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초기 교회에 나타난 연합의 경험은 오늘날에도 무엇이 이뤄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연합은 모든 신자들의 의도적인 헌신이 없을 때는 생기지 않는다. 초기 교회 지도자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을 고취시키는 일을 그들의 사역으로 간주했다. 남편과 아내 그리고 부모와 자녀 사이에 존재하는 사랑이 매일 의도적으로 고취되어야 하는 일종의 헌신인 것처럼 신자들 중에 이뤄져야 할 연합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연합은 여러 방법으로 권장되기도 하고 구체화되기도 한다.

초기 교회에서 이러한 연합을 고취시켰던 뚜렷한 요소들은 기도, 예배, 친교, 공통의 비전 그리고 말씀 연구였다. 그들은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사명을 이해했을 뿐 아니라 서로를 사랑하고 돌볼 책임이 있다는 사실도 인식했다.

그들의 연합은 그들의 지역적인 교제 안에서뿐 아니라 더 넓게는 그들에게서 멀리 떨어진 다른 교회 공동체 사이에서도 그들의 관대함과 상호지원을 나타냈다. “그들의 자비심은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아니하였다는 사실을 증언하였다. 성령의 감화가 아니고는 무엇이 이와 같은 관대함을 가져오게 할 수 있었겠는가? 신자들과 신자 아닌 사람들의 안목에 이것은 큰 은혜의 이적이었다”(사도행적, 344).

 

<부가설명> 의의 열매는 의의나무가 맺는다. 의의 열매를 맺히기 전에 의의나무가 되어야 한다. 의의나무는 여호와께서 심는다.(사61:3) 우리는 먼저 의의나무로 심겨져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역사로 거듭날 때 의의나무로 심겨진다. 그 나무의 본질이 의가되었기 때문에 의의 열매를 맺는다. 초기 교회의 성도들은 배우고 확신하는 일에 거하면서 말씀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역사로 거듭나고 결과로 의의열매를 맺는 의의나무들이 되었고 그것이 가난한 성도들에게 구제하는 모습으로 드러나게 되었다. 마음에 탐심이 없어지고 이기심이 사라진 것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나서 의의나무가 되었으면 이런 결과를 나타내게 될 것이다. 예수님 그렇게 이끌어주소서.

 

교훈 : 초기 교회는 한 지역의 공동체뿐 아니라 멀리 떨어진 공동체 사이에서도 상호 지원이라는 헌신과 자기희생적인 방식으로 연합의 정신을 고취했다.

 

 

11월 2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사도행적>, 35~46 ‘오순절’을 읽어 보라.

“신자들 편에서의 이러한 관대한 행위는 성령의 부어 주심을 받은 결과였다. 복음으로 개심한 사람들은 ‘한마음과 한뜻이’ 되었다. 그들은 하나의 공통된 관심, 곧 그들에게 위임된 사명을 성공적으로 완수하는 일로 마음이 가득 차서 탐심이 자리 잡을 여지가 없었다. 형제들과 저희가 지지한 사업에 대한 사랑이 그들의 돈과 소유물에 대한 애착보다 훨씬 더 컸다. 그들의 행위로 보아 그들은 사람들의 영혼을 세상 재물보다 더욱 가치 있게 여긴다는 것이 분명하였다.

하나님의 성령이 생애를 지배할 때에는 언제나 그러할 것이다. 그들의 마음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충만한 사람들은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셨고 그분의 가난함을 통하여 우리를 부요하게 하신 그리스도의 모본을 따르게 될 것이다. 돈, 시간, 영향력 등 그들이 하나님의 손에서 받은 모든 선물들은 복음 사업을 발전시키는 방편으로 사용될 때에만 가치가 있을 것이다. 초기 교회에서는 그러하였다. 그리고 오늘날의 교회에서도 교인들이 성령의 능력을 통하여 세상 사물에 대한 그들의 애착을 버리게 될 때 그들은 기쁨으로 동료 인간들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희생하게 될 것이고, 그들이 선포한 진리는 듣는 이들에게 유력한 감화를 끼치게 될 것이다”(사도행적, 70~71).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초기 교회가 경험한 연합을 이루는 요소들은 무엇이었습니까? 오늘날 우리 교회는 어떻게 동일한 연합을 이룰 수 있을까요? 그때의 신자들에게 있었지만 우리에게는 부족한 것은 무엇입니까?

※ 말씀을 배우고 성령의 역사로 하나 되게 하신 은혜를 누린 것이다. 지금도 그와 같은 일이 있어야 할 것이다. 말씀을 진지하게 배우는 정신이 없다. 

 

➋ 오늘날의 교회는 예루살렘의 가난한 신자들을 위해 관대한 구제금을 보낸 초기 교회를 어떻게 본 받아야 할까요? 우리는 지역사회에 존재하는 빈곤의 문제를 경감시키기 위한 사업에 어떻게 참여할 수 있을까요?

※ 도르가회가 활성화 되고 TM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좋을 것이다. 

 

요약 : 초기 교회는 성령의 강림을 기다리며 자신들을 준비시켰기 때문에 급속한 성장을 경험했습니다. 오순절 이후에도 성령은 친교와 영적인 활동을 통해 새로운 공동체를 변화시켰고 교회는 서로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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