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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과 제자가 될 뻔했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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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奉ju 작성일08-02-27 20:35 조회4,30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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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과 제자가 될 뻔했던 사람들

<프리즘>
◉ 색(色)갈에 있어서는 배합을 하면 중간색(中間色)을 만들어 내지만, 선택에 있어서는 중간(中間)이란 없다.
그러므로 좋으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든 우상(偶像)이든 너희가 섬길 자를 스스로 택(擇)하시라고 하시면서 자유의지(自由意志)를 인간(人間)에게 주신 것이다.
오늘 교과의 중심 내용은 섬김의 대상을 양쪽을 붙잡으려다 두 가지 모두 다 잃어버린 자들의 실례(實例)이다.
신앙(信仰)은 이론적(理論的)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신앙(信仰)은 몸으로 생활(生活)로 하는 것이다.
몸으로 하는 신앙인들과 이론(理論)만으로 나 자신의 위주로 신앙하는 사람들의 끝은 엄청난 것이다.

(日) (1월 20일)
<어떤 서기관>

(마 8:19절)과 (눅9:57-62절)는 매우 분명한 유사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두 개의 사건을 말하고 있다. 마태는 엄격(嚴格)하게 연대적(年代的) 순서를 따르고 있지는 않지만 두 사람이 자원하여 "예수님"의 제자가 되겠다고 하는 이 기록을 호수를 건너는 기록 가운데 끼워 넣었다.(18, 23-27절)
유일한 합리적 결론은 해변의 설교가 끝마쳤을 때 "예수님"에게 다가온 두 자원자는 "예수님"께서 호수를 건너려고 준비할 때 왔다는 것이다.
자원(自願)하는 모든 제자나 그가 개인적으로 부른 제자들에게 제자 됨에 수반된 궁핍과 희생에 대하여 경고하는 것은 아마도 그 당시에는 관례(慣例)였을 것이다.
당시의 서기관들은 율법과 전통을 가르치는 공식적인 교사들로써 그들 중 대다수는 바리세인 이었다.
그 들(서기관)은 구전(口傳)으로 내려오는 법과 기록된 법을 해설하는 이 직업교사들은 "예수님"과 계속 논박(論駁)중이었다.(참조 마22:34-46; 23:13-14)
그들은 자주 심지어 일상생활(日常生活)의 가장 사소한 행동들의 적법성(適法性)까지 규명(糾明)하려고 하는 철저한 율법주의를 과시했다. 그들은 성경을 분명히 하기보다는 그 뜻에 의심을 품게끔 설명했으며 그들이 성경과 동등하거나 월등하게 여긴 조상들의 유전(遺傳)을 지키기에 여념이 없으므로 "하나님"의 계명을 저버렸다.(막7:9, 13) 그래서 그들은 “자기 어려운 짐”을 사람에게 지우고 자신들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눅11:46참조)

◉ 이 서기관은 부분적(part-time)으로 "예수님"을 따랐을 가능성(可能性)도 있다.
그의 마음속에 끊임없이 주님을 따르고 그에게서 배우고자 하는 열망(熱望)이 생길만큼 주님을 보았고 그의 말씀을 들었을 사람일수도 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원칙(原則)보다는 충동(衝動)을 따라 행동하는 변덕스러운 사람처럼 보이는데 그는 제자(弟子)됨의 대가(代價)가 무엇인지 충분히 계산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 서기관은 교양이 있고 교육을 받았고 사회적 지위가 있는 사람이므로 그는 제자가 됨으로 인해 그 생활의 궁핍이 예를 들면 어부들의 생활보다 더 참기 힘든 것임을 깨달을 것으로 보인다.

◉ 여기나오는 서기관은 룻이 나오미에게 한 말 (룻1:16)과, 베드로가 "예수님"에게 한 말 (눅22:33)과, 비교해보자. 그러나 이 서기관의 경우는 영구적(永久的)인 제자가 되겠다는 의도 이상의 의미는 없는 듯하다.
그는 룻의 충절(忠節)을 갖지 못했고 베드로의 변덕스러움을 나타냈다.

◉ 진정(眞正)한 제자(弟子)됨은 어떠한 역경(逆境)과 실망(失望)에 직면(直面)해서도 초지일관(初志一貫) 목적(目的)과 인내(忍耐)를 요구(要求)한다.

☞ 자원하여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자 했던 한 서기관이 있었다.
그는 선생께서 어디로 가시든지 좇으리라고 고백했으나 그 고백을 지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겠다고 찾아왔던 한 서기관은 순수하지 못한 동기를 가지고 있었다. 지금 나는 어떤 동기로 신앙을 하고 있습니까?

(月) (1월 21일)
<이름 없는 한 제자>

◉ 아마도 이 사람은 부분적(part-time)으로 "예수님"의 제자였을 것이지만 이제 영구적인 전임제자로 받아주기를 제안했다. 감정에 치우치고 충동적이며 성급한 경향이 있는(마 8:19,20절)의 제자 되기를 원한 사람과는 대조적으로 이 사람은 그에 대한 그리스도의 반응으로 판단해 볼 때 분명히 정반대의 기질로 느리고 둔감하고 미루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 모든 개연성을 살펴보면 그의 부친은 당시는 건강했으며 그 아버지의 죽음의 시간은 막연한 미래의 일이었다.
만일 그 사람의 부친이 죽은 것이 아니라 분명이 살아있었다면 "예수님"의 말씀은 문자적이 아니라 비유적인 것으로 취급되어야 한다. 아마도 장차 제자가 되고자 하는 이 사람의 요청은 "예수님"그리스도를 전혀 따르지 않으려는 핑계이든지 아니면 그를 따르려면 모든 것을 버려야하는 그 시점을 연기하려는 시도였을 것이다. (참조 눅 5:11, 28) 만일 그 부친이 이미 사망했다면 심지어 오늘까지도 동방에서 아들의 가장 신성한 의무들 중의 하나로 간주되고 있는 것을 "예수님"께서 등한히 하라고 명령하였을 리 만무하다.
더욱이 날씨에서 장사는 지체 없이 이루어진다. 만일 정말 이 사람의 부친이 사망했다면 이 사람이 "예수님"의말씀을 듣고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분명히 이 사람이나 "예수님"은 부친의 사망을 미래의 어느 시간으로 예상하고 있다.
마 8:19절의 사람과 비교한다면 먼저(일요일) 사람이 지나치게 열광적인 반면 이 사람은 지나치게 조심스럽다. 그는 사실상 “나는 주님을 따르고 싶습니다. 그러나 부친이 살아 계시는 동안에는 어렵습니다. 라고 "예수님"에게 말한 것이다. 그에 대한 답변으로 "예수님"은 “부모에 대한 의무를 전적으로 인정한다. 그러나 그 의무보다도 하늘 나라에 대한 그대의 의 의무가 더 우선이다”라고 말한다.
복음의 요구는 가족의 유대보다도 앞선다. 가족의 유대를 하찮은 것으로 여겨서가 아니라 그 유대가 봉사하라는 그리스도의 요청에 부응하지 않는 핑계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이다.

☞ ① 이 사람의 부친은 위독한 상태에 있지 않았다.
그는 당장 그분을 따르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에 핑계를 대기 위해 그렇게 말했던 것이다.
② 주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열정과 단호한 결단이 요구된다.
지금 제자가 되기를 거부하고 그 일을 막연한 미래로 미루는 사람은 제자가 될 수 없다.

(火) 1월 22일)
<젊은 부자 관원>

◉ 그는 스스로 양심적이고 모범적인 삼을 살았다고 생각했다.
관원으로서 책임 있는 위치에 있었으며 유대인들에게서 존경받는 의회(議會)의 일원이었다. (소망518-520참조)
그가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산헤드린 회원이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젊은 부자 관원은 "예수님"이 도시를 막 떠나려고 할 때 다가와서 말을 건네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젊은이가 “달려”왔다는 것은 청년의 열정을 나타내며 그가 “무릎을 꿇었다”는 것은 그의 신실함을 보여준다.(참조 막 10:17) 그의 태도는 얼마 전에 "예수님"을 “시험”하러왔던 바리새인의 태도와 극명하게 대조가 되었다.(참조 막 10:17)

◉ 이이야기와 제자들에게 준 교훈(23-30절)은
첫째로 : 하늘 왕국에 들어가기 위해 요구되는 자기희생(自己犧牲)의 중요성과
(참조 눅 9:61-62; 14:26-28, 33)
둘째로 : 돈을 사랑하는 것의 위험함을 가르쳐준다.
(참조 마 6:19-21; 눅 12:13-21; 16:1-15)

◉ 그가 가진 재물은 그의 삶에 가장 중요한 것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그것은 그의 우상이었으며 그는 이 재물의 성전에 온 마음의 경배와 헌신을 쏟아 붓기로 선택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가진 것을 모두팔라고 제안한 것은 그가 섬기는 재물신(財物神)의 손아귀에서 그를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였다. 이것이야말로 하늘을 얻을 수 있는 그의 유일한 희망이었다(소망520).

◉ 그는 많은 재물을 소유했으나 그것들을 올바르게 다스릴 하늘의 지혜가 없다면 그것은 축복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저주가 될 것이다. 결국에 그는 가진 것마저도 잃게 될 것이다. 그는 주님을 따르는데 희생이 요구된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는 크게 실망했다.
그가 "예수님"에게 단숨에 달려왔던 기쁨은 침울함과 슬픔으로 변했다. 그 청년이 찾으러 와서 치러야했던 “영생(永生)”을 위한 대가는 그가 기꺼이 지불하려는 것보다 훨씬 값비싼 것이었다.

◉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 어려운 것은 부유함 때문이 아니라 재물에 대한 태도 때문이다.
"아브라함"에게는 “육축과 은금(銀金)이 풍부 했”으나(창13:2) 그는 "하나님"의 친구였다.(약 2:23)

☞ ① 젊은 부자 관원은 예수님을 따르기 전에 먼저 재물의 신을 버려야만 했다. 하늘의 보화를 붙잡기 위해서는 먼저 땅의 재물을 놓아야만 했다.
② 그 청년은 어려서부터 이 계명들을 다 지켰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한 가지 부족한 것’을 그에게 말씀하신 것이다.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헌신과 신뢰가 그에게 결여되어 있었다.
③ 젊은 부자 관원은 외형적으로 계명에 충실하였으나 내면적으로는 재물의 우상을 숭배하고 있었다. 그에게는 더욱 철저한 회심이 필요 되었다.

(水) (1월 23일)
<니고데모>

◉ 밤에 "예수님"을 찾아온 랍비이며 마지막에 "예수님"을 옹호하고 그에게 향료를 채운자인 니고데모는
유대나라에서 책임 있는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는 고등교육을 받았으며 범상하지 않은 재간을 가지고 있었으며 국회의 영예로운 의원이었다.
그도 다른 사람들처럼 "예수님"의 교훈에 감동을 받았다.
그는 부자요 유식하고 명예가 있는 사람 이였지마는 이상하게도 미천한 나사렛 사람에게 마음이 끌렸다.
구주의 입에서 나온 교훈들은 그에게 큰 감명을 주었다. 그리하여 그는 놀라운 진리에 대하여 더욱 배우기를 갈망하였다. (1소망216)

◉ <그리스도가 될 것을 믿은 "니고데모">
"니고데모"가 "예수님"의 놀라운 행사를 목격하였을 때에 이 분이 바로 "하나님"께서 보내신 분이라는 확신이 그의 마음에 굳어졌다.
스스로 갈릴리의 선생을 동정한다고 공공연히 인정하던 아주 교만한 "니고데모"는 은밀한 회견을 구하였다. (행적105)
◉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고 단지 "하나님"께서 보내신 교사로만 인정하였다. (1소망218)
◉ 이스라엘의 학문 깊은 교사 "니고데모"가 질문을 하기 위하여 "예수님"께 왔을 때 "그리스도"는 그에게 원칙을 제시하였다.
"니고데모"는 이스라엘에서 명예로운 지위를 갖고 있었지만 이스라엘의 교사가 그 인격이 어떠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참된 개념을 갖고 있지 못하였다. 그는 거룩한 생활의 일차적 원칙에 대하여 가르침을 필요로 하였다. 왜냐하면 그는 아직도 참된 그리스도인 경험의 초보도 배운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스도인 교육의 기초517)
◉ “니고데모는 예수와 더불어 토론을 할 것을 생각하면서 그에게 왔었으나 예수께서 진리의 기초 원칙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셨다. 예수께서는 니고데모에게, 그대가 필요로 하는 것은 이론적인 지식보다 영적 중생이다. 그대는 그대의 호기심을 만족시킬 것이 아니라 새로운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대가 하늘의 사물을 인식할 수 있으려면 먼저 위로부터 오는 새 생명을 받아야 한다.
모든 것을 새롭게 하는 이 일이 일어나기 전에는 그대가 나와 더불어 나의 권위와 사명에 대해 토론할지라도 그것은 그대를 구원하는데 유익을 가져다주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소망, 168)

◉ “니고데모는 놀라서 침착성을 잃고 풍자가 가득 섞인 말로 그리스도에게 대답하였다.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예리한 진리가 양심을 찌를 때에 많은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니고데모도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그의 마음속에는 신령한 것에 반응하는 것이 없었는데 이는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다.”(1소망,220 영 171)

◉ <마음에 끊임없이 역사하는 성령>
어떤 사람이 변화의 과정을 확실한 시간이나 장소를 대어 말할 수 없고 그 모든 환경들을 자세히 더듬어 말 할 수 없을지라도 이것이 그가 변화하지 아니하였다는 증거가 되지는 못한다.
“ 그리스도께서는 바람과 같이 보이지 않는 능력으로 사람의 마음에 끊임없이 역사하고 계신다.
받는 사람이 혹 의식하지 못할지라도 조금씩 영혼을 그리스도께로 이끌리게 하는 감명이 이루어진다. 이러한 감명들은 그리스도를 명상함으로나 성경을 읽거나 실지로 목사의 말을 들음으로 받을 수도 있다. 갑자기 성령께서 더욱 직접적인 호소를 하실 때에 그 영혼은 기쁘게 자신을 예수께 바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것을 가리켜 갑작스런 회심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그것은 하나님의 성령께서 꾸준하고도 오래 계속된 과정을 거쳐서 호소하신 결과인 것이다.”(1소망 222)
◉ “요셉과 니고데모는 구주께서 살아계시는 동안에는 그분을 공공연하게 믿기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분의 교훈을 들었고, 그분의 봉사의 매 장면들을 자세하게 관찰하였습니다. 비록 제자들은 당신의 죽음을 예언한 구주의 말씀을 잊어버렸지마는, 요셉과 니고데모는 그 말씀들을 기억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을 낙심하게 해 주고 그들의 믿음을 흔들어 놓았던 예수님의 죽음과 관련된 사건들이 그 지도자들에게는 예수님께서 참 메시아이심을 입증해 주었을 뿐이며, 그들로 하여금 그분을 믿는 사람들로서의 위치에 견고히 서게 해 주었습니다.”(인류, 150)

◉“요셉과 니고데모 어느 한 사람도 구주께서 살아 계실 때에 그분을 공공연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렇게 한다면 그들은 산헤드린 의회에서 축출 당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산헤드린 의회에서 그들의 영향력을 행사해서 예수님을 보호하게 되기를 바랐다.
한 동안 그들은 성공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저희가 그리스도께 호감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안 교활한 제사장들은 그들의 계획을 꺾어 버렸다. 그들이 없을 때에 예수님은 선고를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도록 내어 준 바 되셨다.
이제 예수님이 돌아가셨으므로 그분에 대한 그들의 애착심을 더 이상 숨길 필요가 없었다. 제자들 자신도 예수님의 추종자라는 사실을 공공연하게 드러내기를 두려워하고 있을 때에 요셉과 니고데모는 그들을 돕기 위하여 담대히 나아왔다. 이때야말로 부자요 존경받는 이들의 도움이 크게 필 요되는 때였다.
돌아가신 주님을 위하여 가난한 제자들이 할 수 없는 일을 그들은 할 수 있었으며 그들의 부와 세력이 제사장들과 관원들의 적의로부터 제자들을 잘 보호해 주었다.”(소망, 773)

◉ <"니고데모"의 믿음은 십자가로 말미암아 굳건해짐>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보았을 때, 니고데모는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4, 15)고 그 밤에 감람산에서 하신 그분의 말씀을 회상하였다. 그리스도께서 무덤에 누워 계시던 그 안식일에 니고데모는 깊이 생각할 기회를 가졌다. 이제 더욱 밝은 빛이 그의 심령을 비추었다. 그리고 예수께서 그에게 하신 말씀이 이제는 신비스럽지 않았다. 구주께서 살아 계실 때 자기 자신이 그분과 밀접한 관계를 맺지 않음으로 큰 손실을 당했다는 것을 느꼈다. 이제 그는 갈바리의 사건을 회상하였다. 자신을 살해하는 자들을 위한 그리스도의 기도와 죽어가는 강도의 간청에 대한 그분의 대답이 학식 많은 의원(議員)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었다. 다시 그는 고민 중에 계신 구주를 바라보았고 정복자의 말처럼 “다 이루었다”는 마지막 부르짖음을 들었다. 그는 다시 흔들리는 땅과 어두워진 하늘과 찢어진 휘장과 터진 바위들을 바라보았다. 그리하여 그의 믿음은 영원히 굳게 확립되었다. 제자들의 희망을 무너뜨린 바로 그 사건이 요셉과 니고데모에게는 예수님의 신성을 확신시켜 주었다. 그들의 공포심은 확고부동한 신앙의 용기로써 극복되었다.”(3소망, 319-320)

◉ <"니고데모"는 진리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침>
“이제 유대인들이 어린 교회를 멸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때에 니고데모는 그 교회를 보호하려고 나아왔다. 니고데모는 그 이상 조심하거나 의심하지도 아니하였고, 제자들의 신앙을 격려하고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를 유지하는 일을 돕고 복음 사업을 발전시키는 일에 그의 재산을 사용하였다. 전날에 그에게 존경을 표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그를 조롱하고 핍박하였으므로 그는 이제 세상 재물에는 가난하게 되었으나, 자신의 신앙을 옹호하는 일에는 흔들리지 아니하였다.”(행적, 104-105)

◉ <"니고데모"는 요한에게 마음을 털어 놓음>
“니고데모는 그 회견에 대한 이야기를 요한에게 설명하였으며 요한은 자기의 붓으로 그 이야기를 수많은 사람들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하였다. 그곳에서 가르치신 진리는 유대의 관원이 갈릴리의 미천한 선생에게서 생명의 도를 배우기 위하여 왔던 그 어두운 산에서의 엄숙한 밤에서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중요하다.”(소망, 177)

☞ ① 니고데모는 ‘거듭남의 비밀’에 관해 예수님께 여쭈었다.
그는 진실한 마음으로 그 질문을 던졌으며, 예수님으로부터 가장 위대한 답변을 얻었다.
② 혈통이나 가문은 제자가 되기 위한 조건이 되지 않는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 성령의 끊임없는 사역에 마음을 여는 ‘거듭남’만이 참된 제자의 조건이 된다.
③ 니고데모에게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제자도의 본질을 말해 준다.
참된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안 된다.

(木) (1월 24일)
<군중심리(群衆心理)>

◉ 군중심리 [群衆心理, crowd mind] :사전적의미로= (군중의 독특한 정신 상태나 행동양식을 말한다. )
① 군중심리는 사회심리 현상의 하나로, 많은 사람들이 모인 군중이 자기 이상의 행동을 하게 되는 심리상태를 말한다.
②전체란 단순히 개개의 부분 요소를 산술적으로 합한 것이 아니다.
예를 들면 수소와 산소는 모두 가연성 물질이지만 이들의 결합체인 H2O는 불에 타지 않을 뿐 아니라 불을 끄는 역할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모인 군중이나 집단도 이와 같아서 군중 속에 있는 사람은 자기 이상의 행동을 하게 되는데, 이러한 자기 이상의 행동은 사회적으로 위험하고 억제할 수 없는 집단난동·폭동·파괴를 일으키기도 한다.

◉ <군중심리의 실험>
동조(同調)행동에 대한 재미있는 실험사례 한 가지!
① 반원의 탁자에 사람들이 나란히 앉습니다. a b c d e 라고 하죠. a부터 d까지는 실험 보조자이고 e는 참가자입니다. 반원의 탁자에 a-e까지가 알파벳 순서대로 차례로 앉습니다.
여기서 연구자가 a에게 1+4는 몇인가 라고 물어보면 답은 뻔히 5인데도 실험 보조자인 a-d까지는 차례대로 모두 7이라고 대답합니다. 그러면 e는 어떻게 대답할 것 같습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확률이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확실히 70% 이상입니다) '앞 사람들이 이상하구나.' 라고 생각하며 5라고 대답할거라 예상하지만 놀랍게도 7이라고 대답한다는 겁니다. 저 동조 율은 실험보조자의 수가 많을수록 늘어나게 됩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다 자신의 의견이 지지되기를 원하고 틀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과의 마찰을 줄이기를 원하기도 하죠. 그래서 참가자는 답이 틀린지 알면서도 앞의 사람들과 같이 오답을 말하는 것입니다. 실험보조자 중 한명만이라도 5라고 정답을 말한다면 참가자가 오답을 말할 확률은 엄청나게 떨어지게 됩니다. 일치 율이 떨어지게 되면 동조 율이 급격하게 하락한다는 것입니다.

◉ 성경에 군중심리로 발생한 사건으로
① (출 32:1-10절)에 금송아지를 만든 이스라엘 백성들과,
출애굽 과정에서의 군중들의 불평불만(不平不滿)들.
② (요 8:1-11절)에 간음한 여자를 잡아와서 "예수님"앞에 세운 군중심리(群衆心理)

☞ ① 나사렛 사람들은 군중심리에 휘말려 집단적으로 예수님을 반대했으며 그분을 죽이려고까지 했다. 나는 다수의 사람들 앞에서라도 옳은 일을 위해 굳게 서는 소수로 남을 수 있는가?
② 인간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의 선한 감화가 다른 사람들에게 미칠 수 있도록 담대함과 지혜를 가져야 한다.

<확대경(擴大鏡)>
1. “될 뻔 ”이라는 말은 결론적(結論的)으로 안 된 것이다.
제자가 될 뻔했던 한 서기관(書記官)이나, 한 제자(弟子)나, 한 부자관원(富者官員)이나, 모두가 이름도 없이 성경에 전(傳)해저 내려온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전적으로 중심에 두지 않은 자들의 예증(例證)이다.

2. "예수님"의 제자(弟子)가 된다는 것은 매순간 성령(聖靈)의 감화(感化),감동(感動)에 적극적(積極的)으로 반응(反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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