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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과 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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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목사 작성일09-05-22 15:41 조회5,10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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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과 천국
5월 30일 안식일 (일몰: 오후 7시 46분)



기억절: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 14:2-3)



연구범위: 전 9:5-6, 골 1:10-14, 살전 4:13-18, 계 21:1-4, 8.



중심 사상: 우리에게 천국의 약속은 왜 그렇게도 중요한가? 천국에서의 삶은 어떤 것일까? 우리는 어떻게 지금 천국을 맛볼 수 있는가? 천국에 가기를 거절하는 사람들의 최후는 어떻게 되는가?



안식일 오후

많은 사람들은 천국(天國)을 옛날 동화책에나 나오는 상상의 곳으로 생각한다. 만일 우리가 이 세상에서의 삶 너머에 또 다른 삶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라고 그들은 말한다. 어떤 이들은, 다른 사람에게 천국이 있다고 말하는 것조차도 대단히 잘못된 일이라고 주장하는데, 왜냐하면 천국이 있다고 말함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지금 이곳에서의 삶에 충실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심지어 많은 그리스도인들조차도 이러한 개념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천국이 실제적인 장소라는 것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한다. 천국이란 그저 마음의 상태로 해석해야 하지 않을까 하고 그들은 생각한다. 한편 그리스도인들 중에도 죽는 순간에 영혼이 해방되어 천국에 들어가서 하나님과 함께 산다고 믿는 이들이 많다. 그들은 먼저 죽은 아버지, 어머니, 남편, 아내, 혹은 자녀들이 지금 천국에서 하나님과 함께 있으며, 머지않아 자신들도 사랑하는 이들과 만날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 중요한 주제에 관하여 성경이 말하는 진리는 무엇인가?



핵심본문: 요 14:2-3



학습 목표

깨닫기: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안에 있느니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무슨 뜻인지를 깨닫는다.

느끼기: 이 땅에서의 삶이란 일시적인 것이라는 사실에서 용기를 얻는다.

행하기: 이 땅에서의 삶이 다하는 날, 창조주 하나님과 대면하게 될 것을 고대한다.



교과 개요

I. 우리 안에 있는 천국(눅 17:21)

A.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임할 것인지에 대해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물었을 때, 그분께서는 천국이 우리 안에 있다고 대답하셨다. 이 말씀의 의미는 무엇인가?



II.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요 15:19)

A.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며 세상에 속해 있지 않다. 그러나 예수께서 오실 때까지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살아야만 한다. 우리는 이 지상에서 어떻게 하면 천국을 나타낼 수 있는가?



III. 천국에 초점을 맞춤(고전 13:12)

A. 우리는 천국의 실체를 다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가시적이고 물질적인 것에 중요성을 두는 경향이 있다. 사단은 우리의 이러한 약점을 이용하여 가치관을 왜곡시키려 한다. 우리 삶에서 우리의 시간과 관심을 주로 차지하고 있는 것들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B. 비록 우리가 천국에 대해 많은 것을 알지는 못하지만 어떻게 하면 그곳에 초점을 두고 살아갈 수 있는가?



요점: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들을 위해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라'고 말씀하셨다. 낙담과 좌절이 엄습해 올 때, 나의 창조주께서 나를 위해 하늘에 처소를 예비하러 가셨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일요일(5월 24일) 우리는 언제 천국에 가는가?(요 14:1-3)



죽음의 순간에 우리 육신의 몸에서 불멸의 영혼이 분리되어 곧바로 천국에 올라간다는 개념이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편만해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사단은 에덴에서 다음과 같은 거짓말을 했다.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창 3:4)



1. 다음 구절들은 죽음의 참된 본질에 대해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줍니까?(왕상 11:21, 시 13:3, 전 9:5-6, 고전 15:51)

왕상11:21 하닷이 애굽에 있어서 다윗이 그 열조와 함께 잔 것과 군대 장관 요압의 죽은 것을 듣고 바로에게 고하되 나를 보내어 내 고국으로 가게 하옵소서.

시13:3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나를 생각하사 응답하시고 나의 눈을 밝히소서 두렵건대 내가 사망의 잠을 잘까 하오며.

전9:5,6 무릇 산 자는 죽을 줄을 알되 죽은 자는 아무것도 모르며 다시는 상도 받지 못하는 것은 그 이름이 잊어버린 바 됨이라 6 그 사랑함과 미워함과 시기함이 없어진 지 오래니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에 저희가 다시는 영영히 분복이 없느니라.

고전15: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답: 사람이 죽으면 죽음의 깊은 잠을 자다가 예수께서 재림하시는 부활의 아침에 영생의 몸으로 부활하게 된다.


우리는 죽을 때 무의식 상태로 들어가는데, 성경은 이것을 잠에 비유하였다. 그리고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지 못한 채 부활의 아침을 기다린다. 비로소 그 때에 구속받은 허다한 무리가 천국에 들어가, 에녹과 엘리야와 같은 먼저 천국에 가 있는 이들과 만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기나긴 기다림의 시간이 아닐 것이다. 우리가 죽음으로 눈을 감는 순간, 그 다음에 보게 될 광경은 그리스도의 재림이 될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은 3,000년 전에 죽었거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기 전날 죽었거나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그들이 죽음의 순간에 눈을 감고, 그 다음에 인식하는 일은 예수께서 그들을 데리러 재림하시는 광경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그 기간은 순간처럼 느껴질 것이다.



2. 우리가 천국에 들어간 이후에 펼쳐질 미래는 얼마나 영광스러운 것일까요?(요 14:1-3, 살전 4:13-18)

요14:1-3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3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살전4:13-18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4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15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 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18 그러므로 이 여러 말로 서로 위로하.



답: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성도의 부활과 변화, 이것은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가장 영광스러운 소망이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 4:16-17)


"신약에서 복스러운 소망의 초점은 결코 개인의 죽음에 있지 아니하고, 언제나 그리스도의 재림과 그 재림의 때에 있을 성도의 부활과 변화에 있다. 성도가 얻게 될 위안은 죽음의 순간이 아닌, 이와 같은 미래에 있는 것이다."(노먼 걸리, 그리스도께서 오신다. 리뷰 앤드 헤럴드 출판사, 293-294)



성도의 영광스러운 미래

“온 세계에서 죽은 의인들은 그분의 음성을 듣고 무덤에서 일어난다. 이 얼마나 기쁜 순간인가!

그리고 살아 있는 의인들은 '순식간에 홀연히'(고전 15:51) 변화된다. 그들은 영화롭게 되고, 불멸을 얻어 부활한 의인들과 함께 공중에서 주님을 만나 영원토록 그분과 함께 살기 위하여 하늘로 끌려 올라간다.(살전 4:16-17)”(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기본교리, 한국어판, 2007년, 455)





<부가설명> 우리가 언제 예수님과 함께 있을 것인가라고 물으면 질문이 아주 분명해진다. 예수께서 다시 오셔서 우리를 데리고 예수께서 계시는 곳으로 가서 예수께서 계시는 곳에 함께 있게 할 그때에 예수님과 함께 있을 것이다. 거기가 천국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오시지 않은 상태로는 어떤 사람도 천국이나 지옥에 가지 못한다. 다 깊은 죽음의 잠에 들어 있는 것이다. 성경의 기록은 아주 분명하다. 유다나 이스라엘의 열왕들의 죽음에 대하여 기록하면서 “그 열조와 함께 잔다”고 표현한 것이 335회나 된다. “열조와 함께”라는 기록은 죽은 자들의 상태를 아주 명확하게 이해하도록 표현한 것이다. 그 왕들이 죽었을 때 그 열조들도 죽음의 잠을 자는 상태에 여전히 있다는 것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죽든지 내일 죽든지 오래 전에 죽었던지 예수께서 깨우는 그 날이 되기까지 다 함께 자고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깨어 영광이나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다 함께 자고 있는 것이다. 성경의 계시는 오해할 여지가 없다. 의인이나 악인이나 간에 다 예수께서 깨우실 때 일어난다. 다만 의인과 악인을 깨우는 시간은 천 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의인은 악인보다 천년 일찍 일어나는데, 그러나 악인이 천년을 더 자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는 것은 아니다.



교훈: 우리는 죽음의 순간에 몸에서 분리된 영혼이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다. 죽은 후에 무의식 상태로 있다가 재림의 아침에 부활하여 천국에 들어간다.



월요일(5월 25일) 천국인가, 지옥인가?(마 25:46)



모든 사람이 구원을 얻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들은 영원히 잃어버린 바 될 것이다. 인간은 자유 의지를 가진 존재로 창조되었다. 누군가 이렇게 표현했다. “오직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을 것인데, 한 부류는 '주님,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이다.'라고 말하는 자들이고, 다른 부류는, '내가 너의 선택을 존중하노라. 너의 뜻이 이루어질지어다.'라는 주님의 말씀을 들을 자들이다.”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가 창조된 것은 우리의 동의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선택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생의 소망을 주신다. 만약 우리가 선택하지 않으면,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 상태로 되돌아 갈 것이다. 결국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1. 모든 사람은 두 가지 운명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 두 가지 운명이란 무엇입니까?(마 25:46, 요 5:29, 계 21:1-4, 8)

마25:46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요5: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계21:1-4,8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답: 예수께서는 각 사람에게 주어질 두 가지 선택적 운명에 대해 말씀하셨다.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 5:29). 결국에는 영벌(永罰)에 들어갈 자와 영생(永生)에 들어갈 자들로 나뉠 것이다. 우리는 어느 한 편에 속하게 될 것이며 중립은 없다.


천국은 실재하는 곳이다. 그곳은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타락하지 않은 천사들과 더불어 사시는 곳이며, 또한 우리가 하나님 편에 머물기만 하면 살게 될 곳이기도 하다.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 첫째 부활에 참여한 성도는 주님을 따라 천국으로 갈 것이며, 그곳에서 1,000년 동안 있게 될 것이다(계 20:4-6). 그 후 마침내 '새 하늘'과 '새 땅'이 창조될 때에 구원받은 자들이 그곳에서 영원히 살 것이다.

그러나 지옥도 실제이다. 흔히 지옥을 죄인들이 영원토록 고문당하고 불태움 받는 곳으로 생각하지만, 이는 성경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 한편 모든 사람이 구원받을 것이라는 개념도 성경에서 벗어난 가르침이다. 구원의 복음을 거절한 자들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는 자들은 정죄를 받을 것이며, 영원한 죽음을 당하게 될 것이다. 모든 사람이 구원 얻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은,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아무도 멸망하도록 허락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선택은 우리의 것이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기를 원하면 천국은 우리의 것이다.



실제적인 장소인 천국

“성경의 최초의 두 장은 하나님이 완전한 세상을 창조하셔서 인간의 본향으로 주신 것에 관하여 알려준다. 성경의 마지막 두 장 역시 하나님이 인류를 위하여 완전한 세상을 창조하심에 관하여 말해준다. 그러나 이번에는 재창조, 곧 죄가 초래한 폐허에서 지구를 회복시키는 것에 대한 것이다. 거듭거듭 성경은, 구속받은 자들의 영원한 이 본향은, 실제적인 장소, 육체와 두뇌를 가진 실제적인 사람들이 보고, 듣고, 만지고, 맛보고, 냄새 맡고, 재어보고, 묘사하고, 조사해 보고, 충분히 경험할 수 있는 장소라고 선언한다. 하나님께서는 이 실제적인 하늘나라를 이 새 땅위에 두실 것이다.”(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기본교리, 한국어판, 2007년, 508)



<부가설명> 천국과 지옥에 대한 말씀은 성경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우리교인들이 지옥은 없다는 말은 조심해야 한다. 일반적인 지옥사상으로 말하는 그런 지옥이 없다고 하는 것인데, 잘못하면 마치 성경에 지옥이 없다고 가르치는 것 같은 인상을 주는 일은 전혀 지혜롭지 못한 것이다. 천국이 실제적인 것처럼 지옥도 실체적인 것이다. 천국이 하나님이 있게 한 대로 있기를 원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룬 구원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삼위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평화와 행복 중에 사는 생명의 처소인 반명 지옥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결단코 거절한 사람들이 하나님이 있도록 해준 그 존재와 생명을 영원히 반납하는 장소이다. 존재를 반납하면 그들은 영원히 없어지는 것이다. 없어지는 방법이 화장(火葬)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곳이 불 못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탈 것이 다 타고 나면 그들은 전혀 창조되지 않은 것과 같이 없어진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그 상태 그대로 있기를 원하는 존재들만 창조주와 함께 영원히 생명을 영광의 삶을 영위할 것이다. 거기가 영원한 천국이다. 그곳에 꼭 살아 있도록 해야 하지 않겠는가.



교훈: 천국과 지옥은 모두 실제이며, 우리는 자신의 믿음에 따라 천국에서의 영원한 삶을 누릴 수도 있고, 정죄를 받아 영원한 멸망을 당할 수도 있다.



화요일(5월 26일) 하나님의 왕국-지금과 그때(눅 17:21)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할 때, 우리는 새로운 생명에 들어가게 된다. 비록 우리가 늙고 병들고 죽음의 잠을 자는 것과 같은 죄의 결과의 지배를 받을지라도, 진정한 의미에서 우리는 이미 영생을 받았다. 우리는 이 귀중한 사실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다시 태어났으며,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생명을 가졌다. 그리스도께 충성하기로 선언한 자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이다(요일 3:2). 예수께서 선언하셨듯이, 그들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다(요 5:24). 그들은 하나님의 법을 그들의 삶에 체현(體現)함으로써 그분의 왕국의 시민이 되었다. 그들은 이제 다른 주인을 섬기게 되었으며, 더 이상 세상 사물에 초점을 두지 않고 영원한 성(城)을 바라본다.



1. 예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자들이 이미 이 세상에서도 그 왕국의 시민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말씀하셨으며(눅 17:21, 요 14:27), 사도 바울은 이 진리를 어떻게 묘사했습니까?(롬 14:17, 골 1:10-14)

눅17:21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요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롬14: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골1:10-14 주께 합당히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11 그 영광의 힘을 좇아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 12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13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14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답: 예수님의 말씀에 따르면, 우리는 지금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나라를 맛볼 수 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 17:20-21)

바울은 우리가 이미 흑암의 권세에서 건짐을 받고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겼다고 했다.


우리는 이 땅에서도 하늘 왕국을 경험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장차 올 왕국을 더욱 갈망하게 하는 '맛보기'에 불과하다. 예수께서 그분의 영광중에 오실 때,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실 것이다(마 25:32).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할 것이다(마 25:34). 참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이 기다려오던 순간이 아니겠는가? 마침내 우리는 본향에 이를 것이다!

“이 세상의 어떤 친구와의 교제보다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속받은 자들과의 친교가 더 낫다. 이 땅의 가장 훌륭한 왕궁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보다 우리 주께서 예비하신 하늘 집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더 낫다. 그리고 세상에서 듣는 어떤 칭찬의 말보다도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신실한 종들에게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마 25:34)고 하시는 말씀이 더욱 낫다.”(실물교훈, 374)



지금 미리 맛보는 천국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이미 하늘의 궁전에 있다(골 3:1-4). '성령에 참예한바'된 사람들은 실제로 '내세의 능력을 맛'보았다(히 6:4-5). 주님의 영광을 깊이 생각하고 우리의 시선을 매력적인 그리스도의 사랑스런 품성에 고정시킴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른다(고후 3:18). 우리는 재림 때 경험하게 될 변화를 위해 준비되고 있는 것이다.”(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기본교리, 한국어판, 2007년, 177)



<부가설명> 이론상으로 틀림없는 사실들을 말했지만 우리의 실제 생활에 이런 경험을 이루는 것은 그리 쉬운 것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이론이 아니고 실제이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런 경험을 생활에 이루는 사람이다. 예수님이 천국의 실상이시기 때문에 예수님을 모신 사람은 천국을 모신 사람이다. 그의 삶이 천국의 삶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그것을 내세의 능력을 맛보는 것이라고 표현하였다. 그것은 이 세상 환경에 영원토록 살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아무런 방해 없는 천국의 삶을 살게 된다는 말이다. 이 세상에서 천국을 사는 사람들은 세상 세력의 방해 때문에 그런 방해가 없는 천국에서 사는 것 같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고난을 겪는 것이다. 그러나 사상이나 생활철학은 바로 천국의 삶을 그대로 드러낸다는 말이다.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이시다(히13:8). 그분은 세상에 오시기 전이나 세상에 계실 때나 부활 승천하신 후나 인격이나 성품이나 삶의 모습이 항상 동일하셨다. 그처럼 그리스도인들도 역시 그래야 한다. 천국에서 사는 나와 지금 여기서 사는 내가 다른 모습이라면 그것은 성경의 구원에 대하여 분명 오해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교훈: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나고 그분께 충성을 바치기로 한 자들은 그분의 영원한 왕국에 들어가기 전에 이 땅에서도 이미 그 왕국의 시민임을 기억해야 한다.



수요일(5월 27일) 우리의 기대를 훨씬 능가함(마 22:23-28)



천국과 새 땅에서의 삶은 어떤 것일지 궁금해 했던 적은 없는가? 우리는 서로를 알아 볼 것인가? 우리는 영원한 젊음을 간직할 것인가? 그곳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우리 각자에게 할 일이 주어질 것인가? 아니면 오로지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만 부를 것인가? 우리는 우주여행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지상에서의 경험은 얼마나 기억날 것인가? 이런 궁금증을 가진 자들은 과거에도 있었다.



1. 사두개인들은 천국에서의 삶에 관해 무엇을 궁금해 했으며(마 22:23-28), 예수께서는 어떻게 대답하셨습니까?(29-30절)

마22:23-30 부활이 없다 하는 사두개인들이 그 날에 예수께 와서 물어 가로되 24 선생님이여 모세가 일렀으되 사람이 만일 자식이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그 아내에게 장가들어 형을 위하여 후사를 세울지니라 하였나이다 25 우리 중에 칠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 장가들었다가 죽어 후사가 없으므로 그의 아내를 그 동생에게 끼쳐두고 26 그 둘째와 셋째로 일곱째까지 그렇게 하다가 27 최후에 그 여자도 죽었나이다 28 그런즉 저희가 다 그를 취하였으니 부활 때에 일곱 중에 뉘 아내가 되리이까 29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30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가고 시집도 아니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답: 부활을 믿지 않는 사두개인들은 이 세상에서의 삶을 미루어 보아 천국에서의 삶을 상상하면서 부활의 모순점을 지적하고자 하였다. 예수께서는 부활이 가능함을 말씀하시면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능력을 강조하셨다.


마태복음 22장에는 예수께서 사두개인들과 가지셨던 논쟁의 일부가 기록되어 있다. 사두개인들은 유대인 지도계층에 속한 무리 중 하나로서, 육체의 부활을 부인하였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영원한 삶의 모습을 상세히 묘사하고자 의도하신 것이 아니라, 죽음이 정복되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자 하셨음을 문맥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죽은 자들은 그분의 기억 속에 보존되어 있다. 예수께서는 또한 우리가 이 세상의 삶에서 가졌던 고유한 정체성을 가지고 부활할 것임을 분명히 말씀하셨다. 물론 다른 점도 많이 있을 것이다.



2. 새롭게 된 땅에서 우리가 더 이상 경험하지 않을 것들로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계 21:1, 4, 22-27, 22:5)

계21:1,4, 22-27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22 성 안에 성전을 내가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23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췸이 쓸데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취고 어린 양이 그 등이 되심이라 24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리라 25 성문들을 낮에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는 밤이 없음이라 26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겠고 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계22:5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답: 새 하늘과 새 땅에는 눈물이나 사망이나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 없을 것이다. 우리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어떤 것도 그곳에는 없을 것이다.



해변에서 휴가를 즐기기 좋아하는 이들은 바다가 더 이상 없다는 말에 실망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 당시의 사람들에게 바다는 하나의 위협적인 대상이었다. 이스라엘은 배를 타는 민족이 아니었다. 따라서 그들은 깊은 바다를 무서워했다. 복음서에도 나오지만, 그들은 갈릴리 바다를 건너는 것조차도 두려워했다. 계시자 요한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새 세상에는 우리를 위협하는 모든 것이 제거될 것이며, 우리에게 위협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이 모두 없어질 것이라고 하였다. 우리는 영원히 안전할 것이다!



모든 가능성이 증진될 것임

“영원은 무한한 지적 시야를 제공해 준다. 새 땅에서는 불멸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결코 쇠하지 않는 기쁨으로 창조력의 경이, 속죄의 사랑의 신비를 탐구할 것이다. 거기에는 하나님을 잊어버리도록 유혹하는 잔인하고 기만적인 원수가 없을 것이다. 모든 능력은 계발되고, 모든 가능성은 증진될 것이다.”(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기본교리, 한국어판, 2007년, 513)



<부가설명> 하나님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한 것은 사람이 마음으로 생각도 못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고전2:9). 영원한 세상에서 사는 모습은 예수님의 삶의 모습 그대로일 것이다. 사람이 온전한 사랑의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된 상태가 되면 바로 그런 삶이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천연계의 환경이나 생활환경도 우리가 감히 상상하기 힘들 것이다. 그냥 너무 좋은 곳일 것이 확실하다. 성경은 인간이 묘사할 수 있는 자료들로 그것을 최대한 묘사하였다고 생각한다(계시록이나 이사야 등에). 무엇보다도 우리를 창조하시고 구원하신 사람이신 예수님과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것이다. 세상에서 본 모든 불행한 것들은 결코 없을 것이다. 참 속히 갔으면 좋겠는데, 아버지께서 정하신 때에 그것이 실현될 것을 믿으며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승리하는 삶으로 기다려야 할 수밖에 없다.



교훈: 새 하늘과 새 땅에는 죄와 죽음이 없겠고, 슬픔의 그림자도 없을 것이다. 우리를 위협하는 모든 것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므로 영원히 안전할 것이다.



목요일(5월 28일) 하늘에서 주님을 만남(살전 4:16-17)



우리가 이 땅에서 알고 지내던 이들을 새 땅에서도 알아 볼 것이라는 많은 증거가 있다. 우리의 부활의 몸은 부활하신 주님의 몸과 비슷할 것이다. 그분께서 부활 후에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 그 전에 그분과 함께 있던 자들은 그분을 분명히 알아보았다. 사별했던 사랑하는 이들과 다시 만날 때 그 기쁨을 어찌 형언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가장 놀라운 경험은 주님을 만나는 일일 것이다. “후일 주를 대면하여 만날 때가 오리니”라는 찬미가 실현될 것이다. 우주의 창조주와 구속주 앞에 서는 일은 얼마나 큰 특권이겠는가!



1. 우리는 만주의 주를 만날 것이라는 어떤 약속을 가지고 있습니까?(살전 4:16-17, 계 21:22-23)

살전4:16,17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계21:22,23 성 안에 성전을 내가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23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췸이 쓸데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취고 어린 양이 그 등이 되심이라.



답: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이신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만나 뵙는 일은 얼마나 감개무량한 일이겠는가? 우리는 “항상 주와 함께” 있을 것이다.(살전 4:16-17)


우리는 우리 구주를 만나는 것이 어떤 것일지 감히 상상할 수 없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질문들을 던지고 싶어 할 것인가! 우리의 마음속에 간직된 "왜"로 시작하는 수많은 질문들이 마침내 명확한 대답을 얻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지상 생애 동안 왜 그런 시련과 유혹을 허락하셨는지 마침내 이해할 것이다. 결코 다시는 하나님의 지혜와 선하심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왜 하나님께서 어떤 일이 일어나도록 허락하셨는지 이해하게 될 때에 모든 불신은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그 때에야 비로소 우리가 어떻게 온갖 위험으로부터 보호를 받았는지 완전히 깨닫게 될 것이다.



2. 영원한 삶을 사는 동안에 무엇이 중요한 일이 될 것입니까?(롬 14:11, 딤전 1:17, 계 5:13)

롬14:11 기록되었으되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

딤전1:17 만세의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세세토록 있어지이다 아멘.

계5:13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만물이 가로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니.



답: 천국에서 우리는 우주를 여행하고, 우주의 신비를 탐험하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구속의 과학을 탐구할 것이다. 그 외에도 많은 일들을 하겠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일은 우리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일 것이다.


우리는 영원토록 만왕의 왕을 찬양하고 경배할 것인데, 그 까닭은 그분이 우리의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시기 때문이다. “온 우주의 창조자시며 심판자이신 그분께서 인류를 향한 사랑 때문에 모든 영광을 버리시고 스스로를 낮추셨다는 것은 영원히 우주의 경이와 존경을 자아낼 것이다.”(각 시대의 대쟁투, 651-652)



후일 주를 대면하여 만날 때

“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린 주 대면하여 만날 때에 나의 기쁨 어떠랴? 후일 주를 대면하여 만날 때가 오리니 영광중에 대면할 때 기쁨 한량없겠네. 짙은 안개 가리운 듯 희미하게 보이나 후일 복된 날이 오면 주의 영광 보겠네. 근심 고통 사라지고 죄의 뿌리 뽑히면 주의 낯을 뵈오리니 기쁨 한량없겠네. 나를 심히 사랑하사 대속하신 주님을 처음 대면하게 될 때 감격 무한하겠네.”(찬미가, 시조사, 1988년, 567장)



<부가설명> 예수께서는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항상 함께 계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우리가 하늘에서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이 세상에서 예수님과 동행해야 한다. 그래야 그날 예수님을 낯선 사람 만나듯 하지 않을 것이다. 그날 예수님을 아주 친근하게 알아볼 것이다. 세상에서 항상 그분과 함께 살았기 때문이다. 그날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다. 그날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우리가 온전히 알 것이다. 얼마나 가슴 설레는 날인가. 우리의 하루하루는 바로 그날을 위하여 사는 날이 되어야 할 것이다. 주님이 함께 하시고 성령께서 함께 하신다. 그래서 우리는 죄와 사망의 법에서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항상 이길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리운 모든 사람들을 만날 것이다. 그렇기 위하여서는 이 세상에서 그리운 사람들이 모두 그날 거기 있도록 우리의 최선을 다하면 성령의 역사를 간구해야 할 것이다. 아멘.



교훈: 우리는 천국에서 사랑하는 이들과 감격스런 재회의 기쁨을 나눌 것이다. 그리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목숨을 버리신 주님을 만나 뵐 것이다.



금요일 (5월 29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독서 과제: 각 시대의 대쟁투, 제42장 '대쟁투의 종막'(662-678), 살아남는 이들, 제64장 '둘째 부활'(418-420), 제65장 '그리스도의 대관식'(421-426), 제66장 '둘째 사망'(427-429), 제67장 '새 땅'(430-433).

“악인들을 태우는 불은 세상을 정결하게 한다. 저주의 흔적이 다 사라졌다. 구속을 받은 자들에게 죄의 무서운 결과를 기억나게 하는 영원한 지옥불은 없다. 단 하나의 흔적이 남는다. 곧 우리 구주께서 십자가에 달리셨던 그 흔적만이 언제까지나 남는다. 구주의 상한 머리와 손과 발에 죄악이 저지른 참혹한 흔적은 남아 있다.”(살아남는 이들, 430)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예수님의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이들의 구원 문제를 우리는 어떻게 다루어야 합니까? 예수께서 모든 인류, 심지어 그분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는 이들의 죄를 위해서도 죽으셨다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잊지 않으셨음을 이해하는 데 어떤 도움을 줍니까?

* 하나님께서는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을 예수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 수 있도록 해 놓으셨다(고전15:22). 이 기별을 전혀 듣지 못하였으나 천연계의 기별을 통하여 깨달은(롬10:17-21 참고) 사람들은 그들이 비록 스스로 예수님을 알지 못했어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신다면 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때문에 구원 얻게 된 것을 그곳에서 알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2. 성경은 죽음을 잠과 같은 무의식 상태로 묘사합니다. 그렇다면 빈사(瀕死) 상태에서 현란한 빛 가운데 하늘의 존재들이나 사별한 친구나 친척을 만났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된 것입니까? 이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의 경험이 실제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도록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요? 다시 말해, 그들이 본 것이 실제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어떻게 인식시킬 수 있을까요?

* 빈사 상태에 있다는 것은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이다. 온전히 죽은 것이 아닌 상태에서 뇌작용이 그들을 그런 상태에 이르게 하는 수가 있는 것이다. 그것은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던 것이 다른 영의 역사와 함께 사람을 속이는 것이다. 이런 경험에 든 사람들에게 그것이 거짓이라는 것을 알게 하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성경이 가르치는 죽은 후의 상태에 대하여 올바르게 깨닫도록 최선을 다해 보아야 할 것이다. 성령의 역사를 의지해야 할 것이다.



3. 이번 주 교과를 통해 새롭게 깨달은 영적 교훈이나, 한 주일을 살아가면서 꼭 실천하고 싶은 내용은 무엇입니까?

* 영혼불멸론이 오류라는 것을 성경으로 더 잘 증거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이 세상에서 주님을 위하여 이기는 삶을 살아야 하겠다.



요약: 우리는 이 세상에서의 짧은 경험을 훨씬 초월하는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하늘 왕국의 시민들이다. 이 왕국은 현재와 미래에 함께 존재한다. 그것은 이미 우리와 함께 있지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본향으로 데려가시기 위해 영광중에 다시 오실 때 완전히 실현될 것이다. 그 때에 하나님의 임재 안에 있는 영생은 우리의 것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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