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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과 - 새로운 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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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등불과기름 작성일09-09-30 23:59 조회4,09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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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10월03일 (안) (일몰: 오후 6시 13분) (李奉周)

제1과 새로운 질서(秩序) <민수기: 전진하는 백성 >

<기억절(記憶節)>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고전 10:11)
연구 범위: 창 15:14~16, 레 10:1~11, 민 1~4장, 렘 23:23~24, 요 14:15~18, 23.

(깨닫기) :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당신을 대표할 수 있는 무리로 삼으시기 위해
어떤 질서를 세우셨는가?
(느끼기) :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의 교회 사이에는 어떤 유사점이 있으며,
그분께서 우리에게 가르치고자 하시는 교훈은 무엇인가?
(행하기) : 질서에 관한 교훈을 자신의 삶과 가족과 교회에 적용해 보라.

<요점(要點)>
우리 하나님의 백성은 앞으로 전진(前進)하기 위해 자신과 가족과 교회의 조직에 있어서 하나님의 질서의 원칙이 더 많이 인식하고 적용할 필요가 있다.

※ <민수기 서(書)>
1. 민수기는 모세의 다섯 책이라고 일컬어지는 오경(五經)의 네 번째 책이다.
히브리인들은 이 책을 '브미드바르(Bemidbar)"라고 일컬었는데, 그 뜻은 "광야(廣野)에서"(민 1:1)이다.
민수기가 가지고 있는 적지 않은 가치는 그것이 이스라엘 역사의 유랑 기간을 매우 소산하게 기록한 사실에 있다. 그러한 점에서 민수기는 오늘날에도 모든 진실한 신자(信者)들 개개인의 신앙을 흔들고 있는 생활의 광야(廣野)를 묘사(描寫)하는 책이기도 하다.

2. 모세오경의 선행(先行)하는 책들, 곧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는 천지 창조로부터 시작하여 이스라엘 조상들의 역사를 서술하면서, 마침내 애굽에서 노예(奴隸)생활과 출애굽 하는 사건을 특히 소상(昭詳)하게 기록하였다.
애굽을 출발한 이스라엘이 시내산까지 행군한 것으로 출애굽기는 끝났고,

레위기는 각종제사법(各種祭祀法)과 몇 가지 규칙들을 수록하였으며,
민수기는 이제다시 시내산을 출발하기에 앞서 인구 조사를 하고 진영을 정비 하는 일로 막을 올린다.
인구조사, 즉 백성의 수를 세는 일로 시작하기 때문에 이 책의 이름이 민수기(民數記)이다.

3. 민수기의 주된 목표는?
① 여호와 하나님의 모든 거룩하심과,
② 그의 택하신 백성을 돌보심 등을 통하여
③ 그분을 최고의 하나님으로 높이는데 있다.
택하심을 입은 백성의 놀라운 진군이 기록된 이 책에는 또한 이기적인 동기와 목적을 가진 다단과 아비람의 반역이 함께 기록되어 있다.
그 뿐 아니라, 전반적인 배경에는 신로와 인내의 결핍을 나타내는 백성들의 불편과 불만이 깔려있다.
이 과정을 통하여 모세, 미리암, 아론, 발람, 아론의 아들들 및 종교적인 지도자들이 그들의 모든 장단점들을 가진 채로 활약하는 모습들이 잘 나타나 있다.
민수기는 시종(始終) 당신의 백성을 위한 하나님의 택하신 지도자로서 모세의 최상권(最上權)을 보여주고 있다.
⑴ 여호와께서 그들의 백성 한가운데 거하신 일 ,
⑵ 그들을 위한 그의 세심한 경륜,
⑶ 두드러진 몇몇 개인들과 관련하여 일어난 가슴 아픈 사건들,
⑷ 회중에게 진노가 임하지 않게 하고자 특별히 임명된 거룩한 무리로서의 제사장들과 레위인들,
(민 1:53; 참조 민 8:19; 16:22;, 46; 18:5; 레 10:6; 수 7:1; 22:18-20).
이 모든 사항들은 오늘날의 교회에 가장 깊은 종교적 가치를 생생하게 제시하는 찬란한 화폭(畵幅)에 색채(色彩)를 더하고 있으며, 그 모든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 가운데에 거하신다는 역사적 사실을 기초로 하고 있다.

󰏚 민수기는 우리를 들어 올리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救世主)로 묘사한다.
이스라엘의 자손들이 하나님을 섬기기 위하여 구출된 것과 같이 오늘날 하나님의 모든 자녀들도 하나님께 봉사하기 위해 구원받았다.

▶ 민수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40년 동안 시내산으로부터 약속의 땅 가나안의 접경까지 방황한 "광야(廣野)에서의 방황"의 책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또한 민수기는 진군(進軍) 또는 점호(點呼)의 책이라고 할 수 있고(민 33:1-2),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께 대한 반항의 정신으로 가득차 있는 고로 불평의 책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하나님께서 이에 대하여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참조해보자 (시편 95:10)
민수기는 실로 가데스바네아 에서의 이스라엘의 가련한 실패와 순례, 전쟁, 봉사 등과 같은 광야에서 겪은 백성들의 방황과 경험을 기록한 광야의 책이다.

▶ 민수기는 모세가 네 번째 쓴 책으로 이 책의 중심사상은 "징계(懲戒)"이다.
책들의 순서는 다음과 같다.
① 창세기에서는 인간의 부패(腐敗)
② 출애굽기에서는 인간의 구원(救援)
③ 레위기에서는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인간.
④ 민수기에서는 봉사(奉仕)하는 인간.
이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순서(절차)이다
오로지 구원(救援)받은 사람만이 하나님을 섬기며 예배(禮拜)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구원받았다는 것을 기억(記憶)해야 한다.
☞ 구원(救援)은 선(善)한 행위로 말미암아 받는 것이 아니다.
☞ 구원(救援)은 "선(善)한 일을 위하여" 받는 것이다. (엡 2:10).
율법이 우리를 약속의 땅으로 이르게 하나 그 안으로 들어가게 하는 이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율법은 그리스도께로 우리를 인도해 내는 몽학(蒙學)선생이라고 바울은 말했다. (갈 3:24).
율법이 우리를 구원할 수 없으며 우리가 구원 받은 것은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다. (엡 2:9)

▶ <민수기 에 나오는 인물(人物)>
① 모세 - 위대(偉大)한 지도자.
② 아론 - 대제사장, 모세의 형
③ 미리암 - 모세와 아론의 누이.
④ 여호수아와 갈렙 - 이들은 용감한 정탐꾼으로, 하나님을 믿었으므로 가나안까지 죽지 않고 들어갔음.

▶ <행군(行軍)의 발자취>
① 시내산에서 가데스로
② 가데스를 돌아 다시 가데스로
③ 가데스에서 가나안으로 직행.

▶ <두 번의 인구 조사>
① 한번은 시내 광야에서 (제1장)
② 한번은 모압에서 (제26장)

▶ <하나님의 학교(學校)>
이스라엘의 자손은 다음과 같은 중요한 일들을 배웠다.
① 위기(危機)에 처했을 때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 (시 37:5). (민 13:26-14:25)참조.
② 하나님께서는 그의 풍성(豊盛)한 대로 그들의 모든 쓸 것을 채우신다. (빌 4:19)
하나님은 그들에게 양식(糧食)을 주셨다. (민 11:6-9)
하나님은 그들에게 물을 주셨다. (민 20:8)
하나님은 그들에게 지도자(指導者)를 주셨다. (민 1:1, 3)
하나님은 그들에게 약속(約束)한 땅을 주셨다. (민 14:7-8)
③ 그들은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 그분을 예배(禮拜)해야 함을 배웠다.
이스라엘의 자녀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약속(約束)받은 땅 가나안으로 곧장 들어가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었으나 백성들은 하나님께 순종치 않았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가데스에 있는 20세 이상 된 사람은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다 거기서 죽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방황의 시기 40년 동안 새 세대가 일어났으나 그들은 애굽을 떠나던 때와 같이 수적(數的)으로 강대해졌다.
(민 26장 참조)

󰏚 민수기 서(書)를 펼치면 시내 광야에 있는 이스라엘의 자녀들을 보게 된다.
율법이 주어졌고 성막(聖幕) 지어졌으며 제사장들이 임명되어 이제 하나님은 이스라엘 국가가 하여야 할 일을 준비하고 계셨다.
민수기서의 가르침은 그리스도인들의 생활에 커다란 교훈이 된다.

1. <질서(秩序) - 하나님의 계획>
정연한 질서는 하나님의 나라의 제일가는 법칙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족속(族屬)들의 수(數)를 세시고 적당히 배정하시며(민 1-2장) 제사장들과 레위인 들을 선택하여 그들이 할 의무를 지정하시는 것을 본다. (민 3-4장)
☞ 하나님은 질서(秩序)의 창시자(創始者)이시다.

2. <한가운데 계시던 하나님>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의 수(數)를 세시고 그들을 자기 곁으로 모으신 사실은 종요하다.
하나님은 성막(聖幕)안에 거(居)하셨고 12지파(支派)는 주님의 성막을 호위(護衛)하였으며 레위인 들은 성막의 뜰 주위에서 야영(野營)을 했다.
모세와 아론과 제사장들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출입구를 직접 지켰다.
주변이 약 12마일이 되는 진영(陣營)과 하나님께서 그 가운데에서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함께 하시는 광경을 눈앞에 그려보라. (민 9:15-23)
하나님께서는 밤에는 그들의 등불이었으며 낮에는 그늘이었다.
그들의 신발은 해지지 않았으며, 의복(衣服)도 떨어지지 않았다.
이 거대한 진영에 20세 이상 되는 남자가 60만 명이었으며, 부인(婦人)과 어린이와 노인들까지 합하면 300만 명이나 되었다.
그런데 그 중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일은 하나님이 그들 한가운데 계셨다는 사실이었다.

3. <인구조사(人口調査))>
민수기 제1장에서 모세는 인구 조사를 실시하도록 명령을 받았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의 이름을 모두 알고 계신다. (딛 2:19; 빌 4:3).
우리 머리카락의 수(數) 까지도 세시는 하나님께서 그의 모든 자녀를 각각 돌보아 주신다는 사실은 어마나 놀랍고 기쁜 일인가 !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이러한 인구 조사가 있으니 곧 그리스도는 귀중한 보석알과 같은 백성의 수를 세시며 기록책(記錄冊)에 기록해 놓으신다. (말 3:16-17)

4. <하나님께서 거기 계셨다>
무려 300만의 사람들이 풀잎하나 없고 물 한 방울 없는 불모의 사막에 이었다.
그 들은 어떻게 식생활을 했을까? 하나님께서 거기 계셨다.
그들은 길도 없는 적막한 광야에서 어떻게 갈 길을 찾아 나갈 수 있었을까?
하나님께서 그 곳에 계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계시는 것만으로 모든 것은 공급되고도 남음이 있다.
이들 300만 명이 공기를 먹고 산 것이 아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 먹이셨다.
급식(給食)의 책임자는 누구인가? 어디에 식량고(食糧庫)가 있는가?
이 모든 일을 해결하시는 하나님께서 그 곳에 계셨다.
신앙의 계산법에서는 하나님만이 유일한 답(答)인 것이다.

5. <길 없는 사막>
이스라엘의 백성들보다 앞서 광야를 지나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거기엔 발자국도, 길을 안내하는 푯말도 없었다.
그것은 마치 오늘날 이 세상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의 생애와 같다.
우리는 발자취 없는 사막(靈的廣野)을 통과하고 있는 중이다.
거기에는 길이 없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내가 곧 길이요"하신 짤막한 말씀밖에 걸어야 할 다른 길이 없는 것이다. (요 14:6)
주님은 한 걸음 한 걸음 우리를 인도해 주신다.
주님의 말씀을 생각 할 때 그 확실함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요 8:12)

6. <밤의 등불>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에게 낮에는 그들을 인도할 구름을 주셨고 밤에는 불기둥을 주셨다.
이 구름 기둥과 불기둥은 그들이 언제 멈추고 언제 가야 하는지 알려 주었고, 하나님의 법궤(法櫃)(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가 앞서 가서 그들을 인도 하였다.

일요일(9월 27일)
<군대(軍隊)를 조직(組織)함 >

◈ 조직(組織)
조직이라는 말은 몇 가지의 뜻이 있으나 그중에서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여러 개체(個體)나 요소를 모아서 체계(體系)있는 집단(集團)을 이루는 것이나, 또는 그 집단을 조직이라 말한다. 그러므로 어떤 조직이든지 그 조직의 목적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노예(奴隸)에서 갓 해방되어 무기(武器)도 없고 훈련도 되어있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군대(軍隊)를 조직하도록 하셨다.
그 군대의 임무는 근동지방에서 가장 사악(邪惡)하고, 부패하고 죄악의 잔을 채운 족속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집행하는 역할을 하도록 임무를 주시고자 하셨으며, 이로 이제 이들(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직접 통치하시는 신정국가(神政國家)가 되어 그들이 강력한 군대로서 전진 하도록 하기 위(爲)함이었다.

◉ 그때나 오늘날이나 인간의 안목으로 보거나 생각할 때 도저히 비교가 되지 않는 전력(戰力)을 가지고 막강한 나라를 공격 할 수 있을까?라고 하는 생각으로 결론을 내리고 무모한 짖은 아 에 하지 않으려 하는 것이 당연한 생각일 것이지만, 하나님의 뜻은 그렇지 않으시다.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弱)한 것이 사람보다 강(强)하니라” (고전 1:25)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택하시고 그들로 하여금 가나안 땅을 정복하게 하실 것이었으므로 그들은 질서정연한 군대로 조직되어야만 했다.
이와 같은 결실에는 반듯이 하나님의 조건이 충족될 때 성취된다는 것을 명심하자.

우리들의 인생살이도 매일 매순간 겉으로 보기에는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들처럼 너무나 상대가 안 돼 보이며 강해보이는 이웃과 직장과 환경들이 있다. 또한 구도자들이 있다.
그러나 우리군대의 대장이신 전능자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망각(忘却)하고, 인간의 지식이나 인간의 힘과 지혜로 도전 할 때는 여지없이 실패할 것이다.

⊙ 예(例) (삼상 17:45-51 참조)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侮辱)하는 이스라엘 군대(軍隊)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삼상 17:45)

⊙ <아모리 족속에 대한 하나님의 인내(忍耐)>
“아모리 사람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대적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비록 그분을 참되시고 살아계신 분으로 믿지는 않았지만 그들 중에는 착한 사람이 몇 사람 있었고 이들을 위하여 하나님은 오래 참으셨다”(재림교 성경주석(영), 1권, 1093)

☞ <하나님은 질서(秩序)의 하나님이십니다.>
성소제도(聖所制度)를 보더라도 그냥 무작정 계획하지 않으시고 아주 정밀하게 질서 정연하게 계획 하셨다.
질서(秩序)가 없으면 자유하지 못합니다.
교통질서나 신호(信號)를 지키지 않으면 금시 길이 막히고 엉망진창이 됩니다.
성소의 설계는 아주 정밀하고 정확하게 규격과 재료와 식양(式樣)과 기물과 색깔과 설계와 봉사(제사장)들(레위인들)의 배치까지도 구체적으로 설계하셨습니다. 그 모든 것이 우리의 구원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월요일(9월 28일)
<여호와의 임재(臨在)>

◈ <성소제도(聖所制度)>
성소제도의 근본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 거(居)하고자 하심이다. (출 25:8)
성소는 하나님께서 인간과 만나기 위해서, 사람을 만나기 위해 오시기 위해서 만드신 제도이다.
(요 1:14) 하나님께서(예수님) 성육신(成肉身)으로 이 땅에 오셨다.

☞ 창조이후 130년 이내의 어느 시점에 사람이 죄를 짓게 되었다. (창 5:3)
에덴동산에서 추방되는 슬픈 이야기가 창세기 3장22-24절에 기록되어있다.
이렇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심장(心臟)을 찢는 고통을 가져다주었겠지만, 그러나 그렇게 했어야만 했다.
분명히 하나님의 즉각적인 관심은 극락원(極樂願)으로 인간을 회복시키는 것이었다.
이 회복은 오직 하나의 방법을 통해서만 가능했다.
즉 삼위(三位) 신성(神性)의 한분의 죽음이었다.
이 하나님의 계획에 인간이 참여하도록 두 가지 일이 이루어 져야 했다.
<첫째는> 사람에게 이 구속(救贖)의 계획이 알려져야 하고,
<둘째는> 이 계획이 완성 될 때까지 사람들의 마음속에 그것을 계속 기억(記憶)나게 할 제도가 필요했다.

☞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희생의 제물들을 드리는 제도는 사람에게 그의 죄를 항상 생각하게하고, 죄에 대한 시인(是認)과 회개(悔改)하는 마음으로 약속된 구세주(救世主)를 믿는 그의 신앙의 고백이 되도록 하신 것이다"
(부조와 선지자 上 72-73)
그리스도의 정결케 하는 피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정죄 아래 있다.
犧牲祭物이 상징 했던바 오직 예수님의 공로를 통해서만 우리의 罪는 용서받을 수 있다.
"천하인간에게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일이 없"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 (사도행전 4:12)

◈ 하나님 저 하늘 위에 계시고(God above us), 우리 곁에 계시며(God with us), 또한 우리 안에 계신다(God in us).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 이다.”(시 139:7-8)

⊙ “어느 때나 어느 곳에서나, 모든 슬픔과 고통 중에서나, 앞길이 캄캄하고 장래가 암담하게 보일 때에 그리고 우리가 무기력함과 외로움을 느낄 때에 믿음의 기도의 응답으로써 보혜사가 보내신바 된다. 환경은 우리를 지상의 모든 친구로부터 분리시킬는지 모르지만 어떤 환경도 어떤 먼 거리도 우리를 하늘의 보혜사로부터 분리시키지는 못한다. 우리가 어디 있든지 어디를 가든지 언제나 그분은 우리를 지지하시고 격려하시며 위로하시기 위하여 우리의 오른편에 계신다.”(시대의 소망, 669-670)

이것은 영적 이스라엘인 우리들에게도 동일하다. 우리의 중심에는 언제 하나님이 계셔야 한다. 그의 인도를 따라 생각하고 움직이고 생활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의 특권이다.

◉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 진을 쳤을 때 그들 가운데 하나님의 성막이 세워졌다.
그들이 하나님의 임재를 느낄 수 있었듯이 오늘날 우리도 임마누엘 하나님을 느낄 수 있다.

화요일(9월 29일)
<기(旗)를 따라서 >

◈ 레위인
야곱과 레아의 셋째 아들인 레위의 후손을 통칭하며 성막과 성전에서 아론 계열의 제사장들을 보좌해 주었다.
레위 지파는 레위의 아들들의 이름을 본따서, 게르솜 자손과, 고핫 자손과, 므라리 자손의 세 지파로 나누어 졌다. (출 6:16-19; 민 3:17-37; 대상 23:6-23)
이스라엘이 출애굽 할 때,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의 모든 장자들이 여호와의 것이라고 선포하셨으나(출 13:2),
광야생활도중 장자들 대신 레위 지파를 여호와께 봉헌된 자들로 택하셨다 (민 3:12-13; 41, 45).
레위 지파 가운데서 아론의 후손들만이 제사장으로 임명될 수 있었다. (출 28:1)
그리고 아론 계열이 아닌 레위 인들은 성막과 성전에서 제사장들의 업무를 돕는 자로서 봉사 하였다. (민 18:1-7)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금송아지를 섬긴 직후 레위인들 만은 여호와의 편에 서서 배반자들을 죽였다. (출 32:26-28) 이와 같은 그들의 충성심 때문에 그들은 성전에서 봉사할 수 있는 직분에 임명 되었다. (출 32:29)
레위 지파만 유일하게 정복한 가나안땅을 기업으로 분배받지 못했기 때문에 곡물과 가축의 십일조를 그 대신 기업으로 받게 되었다. 그리고 레위인 들은 자기들이 받은 것의 십일조를 제사장들에게 바쳤다. (레 27:30-33; 민 18:21-27)

◉ 진영 내에서 각 지파의 위치도 구체적으로 지정되었다.
각 지파는 해당하는 기(旗) 곁에 진을 치고 기를 따라 진행(進行)하여야만 했다.
그때마다 상황에 따라 바뀌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여호와께서는 치밀하고도 정확하게 그 백성을 조직하셨다.
그들은 하나의 민족으로서 움직이고 있었으나 각 가족의 고유한 유대관계는 깨어지지 않았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기족과 종족의 유대를 떠나지 않고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게 하였다.
영적 이스라엘도 가족과 종족을 귀하게 여기고 가족과 종족이 함께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도록 이끌어야 할 것을 배우도록 해야 한다.

◉ <철저히 군대(軍隊)로 조직(組織)된 이스라엘>
“애굽을 떠난 직후에, 그들은 조직을 이루고 가장 철저하게 훈련을 받았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특별한 섭리로써 모세에게 자격을 갖추게 하여 이스라엘 대군의 선두에 서게 하셨다. 그는 애굽 군대를 지휘하는 강력한 전사(戰士)였다. 그리고 그의 지휘 솜씨는 어떤 사람도 능가할 수 없는 것이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거룩한 성막이 택함 받은 아무 지파에 의해서나 아무렇게나 관리되도록 버려두지 않으셨다. 그분은 법궤를 운반하는 일을 위하여 당신이 정하신 질서를 자세히 알려 주시고, 그것을 메기 위한 레위 지파의 특별한 족속을 지적하실 만큼 철저하셨다.”(교회증언, 1권, 650)

⊙ 그리스도의 교회도 이런 질서와 훈련이 필요하고 잘 훈련되고 교훈된 지휘관이 필요하다.
교회의 직분을 맡은 사람들은 교회를 하나님의 뜻대로 이끌기 위하여 기도하면 영적 훈련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성령께서 함께 하셔서 지도하실 것이다.
특히 이스라엘의 진법을 따라 가족과 종족이 혈연적 유대 중에 주님의 사업을 위하여 훈련되는 것이 아주 바람직하다.

◉ 이스라엘 백성은 각각 그 지파와 가족대로 기를 따라 진을 치고 또 행진하였다.
이처럼 치밀한 조직 가운데서도 가족의 유대관계는 유지되었다.

◉ 모세에 의해 광야의 성소가 완성되었을 때, 히브리 진영(陣營)은 엄정한 질서 안에서 정돈 되었다.
그것은 큰 세부분으로 나뉘어져 진영(陣營)중에서 각각 지정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중앙에는 성막(聖幕), 곧 눈에 보이지 않는 왕께서 거(居)하시는 곳이었고,
그 주위에는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모든 다른 지파들은 이 바깥에 진을 쳤다.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각 지파, 가족 및 종족을 따라 그룹을 지어 훈련된 군대처럼 행진하게 되었다. (민 10장). 진영의 중심부인 성소 바로 주변 세면은 레위인 들이, 한 면은 모세와 아론, 그리고 그 자손들이 동쪽을 향한 방면 곧 해 돋는 편에 진을 쳤다. (민 3:23, 29, 35, 38) 성소에 들어가는 방향 이었다.

민수기 2장에는 각 지파의 장막 위치가 나타나 있다.
(동편)에는 유다, 잇사갈, 그리고 스불론 지파가 있었고, 유다의 진(陣)이었다.
(남편)에는 르우벤, 시므온, 그리고 갓 지파가 있었고 르우벤 진(陣)이었다.
(서편)에는 에브라임, 므낫세, 그리고 베냐민 지파로 에브라임 진(陣)이었다.
(북편)에는 단, 아셀, 그리고 납달리 지파의 단 진(陣)이었다.

◉ <히브리 조직의 완전성과 단순성>
이스라엘 정부는 가장 철저한 조직으로도 훌륭했지만 또한 완전성과 단순성으로도 특징지어졌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만물에서처럼, 이 히브리제도에서도 완전함과 질서가 나타나있다.
하나님께서는 권위와 통치의 중심 곧 이스라엘의 주권자이시고, 모세는 그분의 명(命)을 받아 율법을 집행하는 눈에 보이는 지도자로 택함을 받았다. (출 32:1; 히 3:2, 5, 16)

그 후에 각 지파의 장로(長老)중에서 70인의 의원을 뽑아 모세를 보좌하여 국민의 일반 사무를 담당하게 했다. (민 11:16-17). 그다음에는 성소에서 여호와께 의논하는 제사장들이 있었다.
두령(頭領)들이 지파들을 다스렸다. 이 사람들 아래에는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특별한 임무를 위하여 고용된 관원들이 있었다. (출 18:21-26; 신 1:14-15)

각 지파의 위치가 지정되어 레위 지파의 진(陣)옆에서 행진하고 야영하였다.
"이스라엘 각 자손은 각각 그 기(旗)와 그 종족의 기호 곁에 진을 치되 회막(會幕)을 사면으로 대하여 치라". (민 2:2)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따라 나온 섞인 무리는 지파들과 같은 부분을 차지하지 못하고 진영(陣營)의 변두리에 거(居)하게 하였다. 그 후손들은 삼대(三代)까지 공동사회에서 제와되었다. (신 23:7-8)
철저한 청결법과 위생 규칙이 엄격한 명령과 함께 온 진영과 그 부근에 실행되었다. (레 13:47-59; 민 5:2-4; 신 23:12-13). 어떤 이유로도 부정한 사람은 모두 진영으로 들어오는 것을 거절당하였다.
이와 같은 규칙은 거대한 군중(群衆)들 사이에 건강을 유지하기에 필요 불가결 하였으며, 또한 완전한 질서와 순결을 유지하여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를 즐길 수 있게 함에 필요 하였다.
그리하여, 그 분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구원하시고 적군(敵軍)을 네게 붙이시려고 네 진중(陣中)에 행하심이라 그러므로 네 진을 거룩히 하라". (신 23:14)하셨다

수요일(9월 30일)
<섬김을 위해 부르심을 받음 >

◉ 어느 부모가 자식을 양육하고 공부시키고 어릴 때 뒤 바라지를 해서 금(金)이냐 옥(玉)이냐 잘 키웠는데 이 자식이 장성하여서 부모에게 대들고 말대꾸 하고 패륜아(悖倫兒)의 상태라고 가정(假定)해보자. 아마도 웬만한 부모들은 심장이 터져서 죽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고 이해하게 하시기 위해서 자녀를 주셨으리라.
죄의 노예(奴隸)생활에서 멸망 할 수 없는 우리 죄인들을 출애굽 시키시듯 죄의 사슬에서 해방을 시켜주셨는데 우리의 실생활은 어떠한가?
어렵고 힘들 때 사랑을 받아 본 사람을 반듯이 그 사랑이 어떠한 것인가를 잘 알 것이고, 그 받은 사랑을 다시 베풀 것이다.
힘들고 어렵게 안식일을 지킨 사람과, 당연히 쉬며 아무런 어려움 없이 안식일을 맞은 사람과의 똑같이 맞이하는 안식일의 기쁨은 하늘과 땅 차이일 것이다.
하나님께서 친히 이 땅에 육신의 몸으로 성육신(成肉身)하셔서 섬김으로 죄인인 우리에게 섬김의 본으로 사셨고 보여주셨다.
우리가 매 기(期)마다 하는 세족예식(洗足禮式)에서 우리는 과연 섬김의 자세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생각하며 한 기(期)를 넘기고 있을까?

◉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출하신 사건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내신 역사를 표상한다.
출애굽 후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장자를 바치라고 요구하신 사실에서 그들을 구속하신 일이 얼마나 중대한 일이었는지를 잘 말해 준다.

◉ <이스라엘의 장자(長子)를 대신하여 바쳐진 레위 지파(支派)>
“성막 봉사의 제도를 세우신 후 여호와께서 친히 레위 지파를 성별하시고 백성의 장자를 대신하여 성소에 관한 임무를 맡기셨다. 그분께서는 '그들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내게 온전히 드린바 된 자라. 이스라엘 자손 중 일절 초태생 곧 모든 처음 난 자의 대신으로 내가 그들을 취하였'다(민 8:16)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모든 백성은 하나님의 자비를 인정하는 표로 장자를 위하여 속전을 지불하라는 요구를 받았다(민 18:15~16).”(부조와 선지자, 274)

◉ 하나님께서는 레위 지파에 속한 사람들을 택하셔서 성막 봉사를 하게 하셨다.
그들은 광야의 교회를 섬김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이었다.

목요일(10월 1일)
<거룩한 것을 보호(保護)함 >

◎ “유명(有名)한 아버지의 문제의 아들”
우리말 속담에 부전자전(父傳子傳)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는 뜻에서 사용 하지만 오늘의 말씀은 그와 정반대(正反對)되는 이야기로써 중요한 교훈을 갖고자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무자식(無子息)상팔자라는 말도 여기에 해당 하는 말인가 봅니다.
여기 여덟 사람의 두 명씩 두 명씩 네 짝의 남자들이 있습니다.
① 나답과 ② 아비후
③ 흡니와 ④ 비느하스
⑤ 요엘과 ⑥ 아비야
⑦ 암논과 ⑧ 압살롬
즉 훌륭한 아버지들의 문제아들입니다.
아 론(제사장)의 아들인 = ① 나답과 ② 아비후
엘 리(제사장)의 아들인 = ③ 흡니와 ④ 비느하스
사무엘(제사장)의 아들인 = ⑤ 요엘과 ⑥ 아비야
다 윗(제사장 겸 왕(王))의 아들인 = ⑦ 암논과 ⑧ 압살롬 등이 있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각자가 여러 말로 표현 할 수 있겠지만 저들은 한마디로 “유명한 아버지의 문제아들”이라고 표현 합니다. 그들의 아버지는 모두 유명한 지도자들입니다.
1. 대제사장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 에 대한 기록은 (레위기 10:1 / 민수기 3:2-4 / 민 26:61)
에 기록되어 있으며
2. 제사장 엘리의 아들 “흡니”와 “비느하스” 에 대한 기록은 (사무엘 상 1:3 / 2:12-17)에 기록되어 있으며
3. 제사장 사무엘의 아들 “요엘”과 “아비야” 에 대한 기록은 (사무엘 상 8:1-3) 에 기록되어 있으며
4. 다윗 왕의 아들 “암논”과 “압살롬” 에 대한 기록은 (사무엘 하 13:1-39) 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제 우리 함께 이들의 문제와 그 원인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첫째> 나답과 아비후
대 제사장 아론의 두 아들은 성소에서 분향하다가 불에 타 죽었습니다.
성경은 (레위기 10:1)에
“여호와의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 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꼭 같은 불이지만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두 종류의 불 즉 <거룩한 불>과 <다른 불>이 있었습니다.
거룩한 불은 번제단의 불로써 하나님께서 켜주신 불이요
다른 불은 보통 불로서 제사장이 음식 만들 때 쓰는 불입니다.

올림픽 경기 때 그리스의 아테네에서 돋보기로 채화(댕긴)된 불을 성화(聖火)라고 하는 것도 여기서 유래한 것입니다.
이 두 불의 기능(機能)은 다를 게 없지만 그 발원지가 다르며 구별(區別)하여 사용하도록 되어있었습니다.
이들이 평소에는 잘 구별하여 사용하였으나 이날은 두 형제가 술을 마셔 얼마큼 취해서 거룩한 직무를 수행할 자격을 잃고 도덕적 식별력이 둔해져서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의 차이를 모르게 되었습니다.
영감의 글인 <빛을 전한 사람들 상권364페이지>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답과 아비후는 유년 시절에 자제(自制)하는 즉 절제(節制)하는 습관에 대하여 훈련을 받지 않았습니다.
아버지 아론의 우유부단(優柔不斷)한 기질과 정의(正義)에 대한 확고부동(確固不動)함의 결핍이 그로 하여금 그의 자녀들은 그들의 성향(性向)대로 하도록 방임(放任)되었다.
자기 아들들에 대한 아론의 잘못된 관용이 그들을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증언의 말씀은 이스라엘의 두 번째 지도자인 아론에게 대(代)를 이어 그 자리를 차지할 두 아들의 죽음의 책임을 돌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레위기 10장9절-11절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 하고 있습니다.

레위기10장 9절 <"너의 아들들이 너와 함께 회막(會幕)으로 들어올 때에는 포도주나 독주(毒酒)를 마시지 말아라. 어기면 죽는다. 이것은 너희가 대대로 영원히 지켜야 할 규례(規例)이다. 10절 너희는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여야 하고, 부정(不淨)한 것과 정(淨)한 것을 구별하여야 한다.11절 또 너희는 나 주(主)가 모세를 시켜 말한 모든 규례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르쳐야 할 사람들이다.>"
<표준 새 번역 개정판 성경> (레 10:9-11)
하나님의 분명한 명령을 아론은 아들들에게 가르치기야 했겠지만 귀가 따갑도록 읊었겠지만 마음에 새겨지도록 교육시키지 못한 결과가 부모로서는 일생에 보지 말아야할 자식(子息)의 죽음을 보게 된 것입니다.

<둘째로 “흡니”와 “비느하스”>로
엘리 제사장의 이야기입니다.
엘리의 후계자(後繼者)로 이스라엘의 지도자(指導者)가 된 두 아들을 전쟁에 보내 놓고 소식(消息)을 기다리던 98세의 고령(高齡)엘리 제사장은 숨이 턱까지 차서 헐레벌떡 달려온 전령(傳令)의 비참한 보고를 전해 듣습니다. 전령의 말은 이렇습니다.
①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도망 하였습니다. →
② 우리 백성들이 많이 죽었습니다. →
③ 제사장님 당신의 두 아들(흡니와 비느하스)도 죽었습니다. →
④ 하나님의 법궤는 빼앗겼습니다. →
숨이 차서 달려온 전령의 보고가 점점 비참(悲慘)해져서 “엘리”제사장의 정신이 몽롱해졌지만 버틸 수가 있었는데, 두 아들이 죽었다는 것도 참을 수가 있었는데 하나님의 십계명이든 하나님의 언약궤를 빼앗겼다는 말을 듣는 순간에 엘리 제사장은 의자에서 떨어져 죽고 말았습니다.

엘리 제사장의 문제의 두 아들 흡니와 비느하스가 이끄는 이스라엘 군대가 일차 전쟁에서 4,000명이 죽자 크게 놀라서 이 두 아들 흡니와 비느하스는 특별한 도움을 얻고자 하여 세상적인 생각으로 비상대책을 강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들 생각에는 요단을 건널 때나 여리고 성을 점령할 때에 앞서 행진 하던 하나님의 언약궤(言約櫃) 가져오게 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언약궤가 앞선 이번의 전쟁에선 30,000명이 더 죽고 그토록 힘이 있던 하나님의 언약궤(言約櫃)마저 빼앗기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는 이 사건에서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사무엘 상 4장 4절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삼상 4:4)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이 실로로 사람들을 보냈다. 그들이 거기 그룹들 사이에 앉아 계시는 만군의 주님의 언약궤를 메고 왔다.
하나님의 언약궤를 가져올 때에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도 함께 왔다.
하나님의 계명의 말씀이 마음에 새겨져있지 않고 그 말씀대로 살지 않는 사람이 하나님의 계명 곁에 있으니 이는 아무런 힘도 없게 되어 그 백성도 그 지도자들도 보호받지 못하고 그 하나님의 법궤자체도 빼앗긴바 되고 만 것입니다.

계속해서 성경의 기록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삼상 2:29) 그런데 너희는 어찌하여, 나의 처소에서 나에게 바치라고 명한 나의 제물과 예물을 멸시하느냐? 어찌하여 너는 나보다 네 자식들을 더 소중하게 여기어, 나의 백성 이스라엘이 나에게 바친 모든 제물 가운데서 가장 좋은 것들만 골라다가, 스스로 살찌도록 하느냐?

하나님을 모독하고 많은 백성을 죽게 한 패전(敗戰)의 원인은 처음부터 이스라엘의 사사인 최고의지도자 엘리의 가정교육 실패에 있었던 것입니다.
엘리제사장을 꾸짖으시는 하나님의 꾸중에 귀를 기울여 봅시다.
사무엘상 2장29절에 “네 아들을 나보다(하나님)보다 더 중히 여겼다고” 성경 말씀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사무엘서 상권 3장13절에는 “이는 그가 자기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禁)하지 아니 하였음이니라”라고 기록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의 아버지인 엘리의 죄는 이미 모든 사람이 잘 아는 죄이며 자식(子息)을 잘못 교육하여 돌이킬 수없는 죄로서 제사(祭祀)로도 속(贖)함을 얻을 수 없는 죄라고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엘리는 제사장직분과 최고의 재판권을 가진 사사로서 온 백성을 다스리도록 임명을 받았으나 가족을 잘 다스리지 못하고 자녀들의 악한 습관과 정욕을 시정 하는데 자기의 권위를 행사하지 않았습니다. 엘리 제사장은 자녀교육은 잘 알고는 있었으나 자기의 아이들의 잘못에 대해 체벌하지도 않고 어떤 요구는 거절할 수가 없어서 그 중요한 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피했던 것입니다.
그토록 백성 앞에서 막강(莫强)한 권위를 가진 엘리제사장에 관해서 영감의 글인 <빛을 전한 사람들 하권 174쪽)에는 이렇게 기록 하고 있습니다. “ 아버지는 자녀들의 종이 되었다.” 라고 말입니다.
계속해서 <빛을 전한 사람들>에는 이스라엘의 최고의 지도자 엘리의 가정교육의 실패와 그 결과로 백성에게 미친 영향에 대해 여러 가지로 길게 언급하고 있지만 여기에 몇 말씀만 소개하고자 합니다.
1. 엘리는 처음에 온화한 방법으로 악(惡)을 제어하도록 시도하여야 하였다.
그러나 만일그것으로 되지 않을 때에는 가장 단호한 방법으로 행악자(行惡者)들을 진압해야 하였다.
2. 그 다정한 아버지 엘리는 그의 아들들의 유년 시절에 그들의 과오와 죄를 묵과하고 장차 그들이 자라나면 악(惡)한 성벽을 버릴 것이라고 혼자 속으로 믿었다.
3. 젊은이들이 제멋대로 하도록 허락하는 것보다 가족들에게 더 큰 저주가 없다.
4. 엘리는 그의 지위 때문에 그의 감화는 보통사람들의 감화보다 더욱 널리 퍼졌다.
그의 가정생활을 온 이스라엘이 모방하였다.
5. 신앙생활을 한다고 공언하는 부모의 자녀들이 악습에 방종하게 되면 하나님의 진리는 수치를 당한다. 경건하다고 열을 올리는 것보다 그들의 행동이 더 큰 소리로 말한다.
6. 어떤 환경에서든지 부모의 불충실은 큰 죄가 된다.
그러나 그 죄가 하나님의 백성의 선생으로 임명된 자들의 가정에 존재할 때에 그것은 십 배나 더 커진다. 자기 가족들을 다스리는 일에 실패하게 되면 그들의 그릇된 모본이 많은 사람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한다.
엘리는 자녀교육에 실패한 죄보다 더 큰 죄는 전혀 지도자로서 적합하지 않은 아들을 제사장으로 임명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악한 아들들이 계속해서 범죄 할 때에 공정히 다루었다면 제사장직을 박탈하고 중징계를 했어야 하는데 그냥 둬서 이런 큰 재앙을 불러오게 한 것이다.

<셋째 요엘과 아비야>
성경에는 당시 이스라엘의 최고의 종교 및 정치지도자인 사무엘의 두 아들의 교육 실패의 원인이 명확하게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단지 그 아들의 상태를 사무엘 상 8:3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 하고 있습니다.
“그 아들들이 그 아비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고 이를 따라서 뇌물을 취하고 판결을 굽게 하니라”고만 기록 되어있습니다.
사무엘은 나뿐 환경에서 크게 성공한 대표적인 인물가운데 한 사람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방종을 방치해둔 두 아들의 아버지가 선생님인 가정에서 함께 살며 교육을 받은 사람이지만 그는 엘리의 두 아들을 보며 배우지 않고 선생님의 말씀을 따라 살며 멀리 있지만 한나 어머니의 뜨거운 사랑으로 주위 환경의 모든 불순물을 녹이며 정금(正金)같은 지도자가 된 것입니다.
엘리의 두 아들이 온 나라에 소문난 불량자라 그런 집에 아들을 맡겨놓고 심히 걱정스러웠지만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하고 비록 아들을 올바로 교육하지 못한 선생이지만 나쁜 교훈을 제자에게 가르치지는 않을 것이므로 그 말씀에 청종케 함으로 그 아들을 훌륭하게 키울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엘리의 가정교육의 실패가 온 이스라엘 사람에게 영향을 끼쳤지만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무엘에는 그 영향력이 미치지 못했던 것입니다.
레위인의 규례로는 25세가 되어야 성소를 위한 특별한 봉사를 하도록 되어있었는데 사무엘은 예외(例外)였습니다. 아직 아이인데도 성소직무(聖所職務)에 성별(聖別) 된 증거로 세마포 에봇을 입고 있었습니다. 더욱이 그는 지도자로서 대단히 성공한 사람이었습니다.
“여호수아 시대(時代)이래 사무엘의 통치 시대처럼 그렇게 큰 지혜로 성공적인 정치를 하던 때가 없었다.” 사사, 선지자, 제사장이란 삼중 직분을 하나님께 받고 사심 없이 충성스럽게 통치한 결과 나라가 크게 번영하였습니다. 그런데 사무엘이 늙어서 정치를 두 아들에게 분담하였는데 두 아들은 아버지의 교훈에 귀 기울이지 않고 아버지의 순결하고 무아적인 생애를 본받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는 이스라엘 역사에 중요한 한 굵은 선을 긋게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다스리시는 신정시대(神政時代)에서 왕정시대(王政時代)로 옮겨가는 결과를 초래한 것입니다. 이 훌륭하고 유명한 아버지의 두 아들이 뇌물을 받고 재판을 잘못하는 지도자가 되어 역사를 바꿔놓은 사람이 되게 한 부모로써의 책임을 언급한 표현이 있습니다.

영감의 책 <빛을 전한 사람들 하권200쪽>에
“엘리에게 주어진 경고는 사무엘의 마음에 마땅히 감화를 끼쳐야 할 만큼 감화를 끼치지 못하였다. 사무엘은 어느 정도 아들들을 제멋대로 하도록 방임(放任)하였으므로 그 결과가 그들의 품성과 생활에서 뚜렷하게 나타났다.”

여기 엄격하고 원칙에 강한 지도자들의 주의를 환기시키는 중요한 말씀이 있습니다.
<빛을 전한 사람들 하권200쪽>에 말씀에
“백성 중에 있는 많은 사악(邪惡)한 사건들은 사무엘의 귀에 들어가지 않았다.
만일 그의 아들들의 악(惡)한 행위를 알았더라면 사무엘은 지체(遲滯)없이 그들을 해임(解任)시켰을 것이다.”

이렇게 훌륭한 아버지가 어느 정도 방임한 결과가 엄청난 문제를 초래했습니다. 또한 경건하고 엄격한 아버지에게 자녀들의 행위가 숨겨질 가능성이 많습니다.
가끔은 어머니까지도 자식의 잘못을 엄격한 아버지에게 숨기는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사무엘은 바깥일에 충실하다가 집안 사정 특히 자녀의 형편에 귀가 어둡게 되어 결과적으로는 자기가 이루어놓은 일보다 더 큰 폐(廢)를 끼치는 유명한 아버지 중 한 사람이 되고 만 것입니다.

<,넷째 “암논”과 “압살롬”>
<다윗>과 <여로보암>은 성경에 대조적으로 그 이름이 거명되는 특별한 두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선(善)한 왕을 일컬을 때는“다윗처럼 선한 왕”이라고 하며
악(惡)한 왕은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처럼 악한 왕’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다윗왕은 유명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다윗에게 문제의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이름이 바로 “암논”과 “압살롬”인데 그들의 문제는 우리 모두가 익히 잘 아는 사실입니다.

성경 사무엘 하 13장을 요약해서 말한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 다윗의 맏아들 암논이 이복동생 압살롬의 누이 다말을 연애(戀愛)하므로 마음에 병이 들었습니다.
어느 날 병든 체 하여 문병을 온 아버지 다윗에게 다말을 시켜 자기에게 과자를 구워주면 낫겠다고 속인 후 “이스라엘에서 마땅히 행치 못할 괴악한 일”을 행하고는 그녀를 미워하여 쫓아냄으로 더 큰 악을 저지르게 되었습니다. 이리하여 다말은 성경에서 처량하게 살았다고 표현된 유일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2년 후 압살롬이 암논을 비롯하여 모든 왕자들을 자기 집에 초청하도록 다윗 왕에게 간청하여 겨우 허락을 받은 후 술을 즐기는 암논을 죽이고 드디어 역모(逆謀)를 꾀하여 전쟁을 일으켰으며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되었습니다.
다윗의 이 두 아들 사건 서두에 “그 후에 이 일이 있으니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무슨 일 후에 입니까? 바로 다윗이 우리아에게 행한 범죄와 뒤이어 밧세바가 낳은 아들이 죽은 사건입니다.
이 사건 후에 다윗의 판단력에 문제가 생긴듯합니다.
암논의 가슴속에 이글거리는 불순한 욕망을 충족시키고자 꾸며낸 행위와 압살롬의 마음속에 불타오르는 복수심(復讐心)을 직시(直視)할 눈이 없었던 것입니다.
한 아버지로서의 지도자(指導者)가 영안(靈眼)을 상실함으로 근친상간(近親相姦)에 형제살생(兄弟殺生)에 부자반목(夫子反目)에 동족상쟁(同族相爭)의 비운(悲運)을 초래하게 되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온 이스라엘에서 가장 칭송 받는 자이며 라고 (사무엘 하 14:25)에 기록 하고 있으며,
(사무엘 하15장13)절에는 이스라엘의 인심을 다 돌려놓을 수 있는 실력을 갖춘 인재(人才)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압살롬을 반역자(叛逆者)가 되게 하여 결국은 죽게 한 것입니다.

끝으로 다윗의 두 아들 사건에서 부언(附言)해둘 한 가지는 교활(狡猾)한 친구가 이 엄청난 배후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암논의 사촌이며 간교(奸巧)한 친구인 요나답의 계교(計巧)가 욕망(慾望)의 충족에 적중하긴 했지만 큰 불행의 발단이 된 것입니다.
성경의 가장 좋은 친구는 자기 아버지 다윗의 친구 <요나단>으로서 목숨을 살려주었는데
그 아들인 암논은 간교한 친구 <요나답> 때문에 자신도 죽고 많은 사람을 죽게 한 전쟁을 유발하게 된 것입니다.
한글의 글자로 볼 때 <요나단>과 <요나답>은 비슷한 것처럼 좋은 친구와 나쁜 친구는 구별하기가 힘듦으로 어릴 때부터 부모들은 자녀들의 친구 선택에 유의하고 투자도 할 필ㄹ요가 있음을 부언(附言)합니다.
예수님그리스도의 은혜로 하늘 왕자가 된 우리는 모두 유명한 부모들입니다.
그러므로 염려되는 것은 우리 자녀들이 아론이나 엘리나 사무엘이나 다윗의 두 아들처럼 되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주의 말씀 따라 잘 키워서 그 들도 하늘 왕자가 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 <가정을 회복하라 冊 : 서 광수 목사님 글 인용>

◉ 시내산에서 예배의 체계를 갖출 때에 하나님께서는 레위 지파의 한 가족을 택하셔서 제사장의 직분을 수행하게 하셨다(민 4장). 모세는 아론을 대제사장으로, 그리고 그의 네 아들 나답, 아비후, 엘르아살, 이다말은 조력하는 제사장들로 성별하였다. 레위 지파의 나머지 사람들은 제사장의 역할을 하지 않고 다른 일들을 도왔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예배 체계를 거룩하게 유지하고 보호하기 위해 협력하여 일하도록 각자의 위치와 봉사 영역이 명확하게 주어졌다.

의문의 여지없이, 성소 안 여호와 앞에서 제사장 직분을 수행하는 아론의 아들들과 마찬가지로 레위인들도 엄숙한 책임을 부여받았던 것이다. 창조주이신 여호와께서는 성소에 임재하심으로 그들 가운데 거하심을 나타내셨다(민 14:10~11). 이는 그들을 애굽에서 구속하신 한 분 안에만 안전이 있음을 상기시켜주는 힘 있는 상징이었다. 제사장들은 거룩하신 하나님과 부패한 백성 사이의 중재자들이었다. 그들의 역할 또한 하늘 성소에 계신 우리의 크신 대제사장 예수님을 표상하였다.(히 8장)

“우리가 거룩한 사물을 다룰 때 보통의 사물을 다루듯이 하면 하나님께서 불쾌히 여기실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빛을 전하시기 위해 구별해 놓으신 사업은 거룩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업과 어떠한 관련이라도 있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지혜만을 믿는 헛된 생각을 품지 말고 하나님의 지혜 안에서 행해야 한다.”(복음전도, 639)

◉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택하셔서 거룩한 임무를 부여하실 때에는 엄숙한 책임도 따른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들의 삶은 거룩하게 구별되어야 한다.

◉ 질서를 밀접하게 본받으면 본받을수록, 이들 하늘의 매개자들은 우리를 위해 더욱 더 성공적으로 일할 수 있다. 만일 우리가 조화된 행동의 필요성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무질서하며, 절도가 없고, 제멋대로 행동한다면 철저하게 조직적이며 완전한 질서 속에 움직이는 천사들은 우리를 위해 성공적으로 일할 수가 없다. 그들은 혼란과 소동과 분열을 축복할 수 있는 권위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슬퍼하며 돌아서 버린다. 하늘 사자들의 협력을 원하는 이들은 모두 그들과 일치하게 일해야 한다.”(목사와 복음 교역자에게 보내는 증언, 28)

<요약(要約)>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시다.
각 지파가 시내산 앞 광야에 모였을 때 그분께서는 성막을 중심으로 그들을 조직하셨다.
먼저 이스라엘 군대가 조직되었고, 각 지파의 진과 진행할 순서가 정해졌다.
레위인 들은 성막 주위에 방벽처럼 진을 쳤으며 그들에게는 성막을 옮기고 세우는 봉사를 위한 세부적인 지시가 주어졌다. 이스라엘이 이동할 때에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그들 가운데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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