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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과 에덴 이후의 청지기들(질문, 대답, 부가설명)02/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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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18-01-27 07:38 조회5,19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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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3일 안식일

일몰:오후 5시 58분

 

● 연구 범위 : 사 22:14~18, 고전 4:1~2, 골 2:2~3, 엡 6:13~17, 고후 5:10

 

● 기억절 : “오직 하나님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을 위탁 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살전 2:4).

 

아담과 하와의 첫째 직임에는 청지기 직분이 포함되었다. 동산과 모든 피조물들은 어느 것 하나도 아담과 하와의 소유가 아니었지만 하나님은 그것들을 그들에게 맡기셔서 가꾸고 누리며 다스리게 하셨다(창 2:15).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이 그들에게 위탁하신 것들을 맡은 청지기들이었다.

이번 주 우리는 특별히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여 에덴에서 추방된 이후에 우리가 청지기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자세히 살펴보려고 한다. 즉 우리는 인류가 처음 누렸던 환경과는 매우 다른 환경에 살아가는 청지기이다.

청지기 직분이란 무엇인가? 성경을 보면 그들의 삶의 방식을 통해 청지기란 무엇인지 보여주는 인물들이 있다. 또 그것을 더욱 분명하게 정의하는 말씀들도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청지기가 되면 우리의 초점이 세상과 그것의 물질적인 가치에서 창조주와 그분의 선교로 바뀐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하셨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거룩한 기원에서 비롯된 책임을 맡기신다. 그러나 타락 이후에 청지기 직분의 임무는 변했다. 왜냐하면 물질세계를 돌볼 책임과 함께 영적인 진리를 돌볼 선한 청지기의 임무도 우리에게 위탁되었기 때문이다.

 

학습목표

1. 깨닫기 : 구약과 신약 성경의 문맥에서 청지기 직분에 대한 성경적인 개념을 파악한다.

2. 느끼기 : 각자의 삶의 형편 속에서 청지기로 부름을 받고 있음을 느낀다.

3. 행하기 : 청지기 직분에 참여하기 위한 자신만의 목록과 지침을 작성한다.

 

➋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청지기였다는 사실은 그의 후손인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 후손들도 창조주 하나님의 청지기 직무를 이어받은 청기들이라는 의미가 된다.

➌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청지기로 부름을 받은 자에게 필요한 마음 자세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 충성하는 것이다. 

➍ 우리가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은혜의 청지기’가 되어야 한다는 말은 무슨 뜻이라고 생각합니까?(고전 4:1~2, 벧전 4:10)

※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의 뜻대로 관리하면서 필요한 사람들에게 전해야 하는 책임에 대한 뜻이다. 

➎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선물 중에 구원과 속량을 잃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말씀과 기도로 자기를 잘 지켜야 한다. 

 

결론: 성경에 기록된 신실한 신자들의 삶 속에는 성경이 가르치는 청지기 직분의 기본 요소들이 새겨져 있습니다. 청지기 직분의 횃불은 세대와 세대에 걸쳐 이어져 왔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신실한 청지기로 살다가 다음 세대에게 횃불을 넘겨줄 차례입니다.

 

 

1월 28일(일) 구약 성경의 청지기들

 

‘청지기’라고 번역된 말은 구약 성경에 몇 번 등장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경우 그 말은 ‘집에 관하여’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에 관한 구절, 또는 집을 관리할 책임의 개념에서 비롯되었다(창 43:19, 44:1, 4, 왕상 16:9). 청지기는 집안일과 주인의 소유물을 관리하고 지시 받은 모든 일을 수행할 책임이 있었다. 청지기의 속성을 알아보면 구약 성경에 나타난 청지기의 정의를 파악할 수 있다. 청지기는 청지기 직분과 분리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것이 그들의 정체성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일부 청지기의 속성들은 구약 성경에 명백하게 드러난다. 첫째, 청지기에게는 큰 책임이 따르는 지위가 부여되었다(창 39:4). 청지기는 능력에 따라 선발되었고 일이 수행되는 것에 따라 주인의 존중과 신뢰를 얻었다. 둘째, 청지기는 그들에게 위탁된 것들이 주인의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창 24:34~38). 이것이 주인과 청지기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청지기는 자신의 위치를 이해한다. 셋째, 청지기가 자신에게 위탁된 것을 자신의 필요를 위해 챙길 때에 그와 주인과의 신뢰의 관계가 깨졌고 그 청지기는 쫓겨났다(창 3:23, 호 6:7).

 

1. 사 22:14~18을 읽어 보라. 히스기야의 재임기에 셉나는 국고 재무와 왕궁 청지기로 임명되었다. 그 둘은 모두 매우 중요하고 권위 있는 직책이었다. 하지만 그가 자신의 직책을 남용한 결과 그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사 22:14~18] 만군의 여호와께서 친히 내 귀에 들려 이르시되 진실로 이 죄악은 너희가 죽기까지 용서하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5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가서 그의 국고를 맡고 왕궁을 맡은 자 셉나를 보고 이르기를 16 네가 여기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 여기에 누가 있기에 여기서 너를 위하여 묘실을 팠느냐 높은 곳에 자기를 위하여 묘실을 팠고 반석에 자기를 위하여 처소를 쪼아 내었도다 17 나 여호와가 너를 단단히 결박하고 장사 같이 세게 던지되 18 반드시 너를 모질게 감싸서 공 같이 광막한 곳에 던질 것이라 주인의 집에 수치를 끼치는 너여 네가 그 곳에서 죽겠고 네 영광의 수레도 거기에 있으리라.

 

답: 멸망당했다. 

 

“청지기는 자기 자신을 그의 주인과 동일시한다. 그는 청지기의 책임을 수락한다. 그러므로 그는 주인을 대신해서 행동하고, 그의 주인이 주관한다면 그가 하게 될 그대로의 일을 해야 한다. 그의 주인의 사업이 그의 것이 된다. 청지기의 지위는 권위 있는 지위이다. 그의 주인이 그것을 위탁하기 때문이다. 만일 그가 이기적으로 행동하고 주인의 재산으로 장사해서 얻은 이익을 자기 자신의 것으로 돌리게 되면, 그는 자기에게 맡겨진 위탁물을 왜곡시키게 된다”(교회증언 9권, 246).

 

<부가설명> 여기에는 청지기가 무엇인지 그 뜻과 임무를 잘 소개해 주었다. 청지기는 주인에게 가정관리 책임을 받은 사람이다.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서 그 일을 수행했다. 청지기는 주인이 할 그 일을 주인을 대신해서 하는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뜻대로 집안을 처리하면 안 된다. 주인의 뜻대로 해야 한다. 그러므로 주인의 뜻을 잘 파악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청지기이다. 주께서 우리에게 위탁한 모든 것을 주 예수님의 뜻대로 관리해야 한다. 재정뿐만 아니다. 자기 몸도 그렇다. 재능도 그렇다. 시간도 그렇다. 신자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을 주 예수님의 뜻대로 관리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예수님이 영광을 받으시도록 해야 한다. 나의 행복과 평안이 예수님의 행복과 평안이 되게 해야 한다. 나는 행복한데 예수님이 괴롭다면 문제가 된다. 나는 부자인데 예수님이 가난하게 되면 문제이다. 우리는 날마다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주시는 주님께 어떻게 그것을 관리하고 있는지 그날에 계산해야 할 것이다. 잘 하였다고 칭찬받는 청지기가 되면 얼마나 좋겠는가.

 

교훈 : 충실한 청지기는 자신에게 있는 것이 주인의 소유임을 인정하고 주인의 심정으로 소유를 관리하는 큰 책임을 맡아 수행함으로 주인의 신뢰를 얻는다.

 

 

1월 29일(월) 신약 성경의 청지기들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전 4:1~2).

 

신약에서 ‘청지기’를 뜻하는 단어로는 ‘에피트로포스’가 3번, ‘오이코노모스’가 10번 등장한다. 이 두 단어는 모두 주인에 의해 위탁된 관리 책임들을 수행하는 직책을 묘사한다.

신약이든지 구약이든지 청지기는 그들이 하는 일에 따라 정의된다. 신약 성경은 특히 청지기를 책임감과 기대와 관련하여 묘사한다(눅 12:48, 고전 4:2). 반면 구약은 우리가 하나님의 청지기라고 직접적으로 정의하기보다는 하나님의 주권을 선언하는 데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래서 구약과 신약에서 청지기의 개념이 서로 엇비슷해 보이지만 신약은 단순한 가사 관리를 초월하여 개념을 확장시키고 있다.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눅 16:1~15)에서 예수님은 청지기의 정의를 확장시키셨다. 그분의 가르침은 재정 파탄을 모면한 청지기의 이야기 그 이상을 다루고 있다. 그 비유의 교훈은 지혜로운 믿음의 표명을 통해 영적인 파탄을 모면하는 자들에게도 적용할 수 있다. 지혜로운 청지기는 단지 지금 이곳을 초월하여 예수님이 재림하실 미래에 대비할 것이다(마 25:21).

 

1. 고전 4:1~2, 딛 1:7, 벧전 4:10을 읽어 보라. 이 말씀들을 통해 우리는 청지기와 청지기 직분에 대해 무엇을 배우는가?

[고전4:1,2]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2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딛1:7] 감독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책망할 것이 없고 제 고집대로 하지 아니하며 급히 분내지 아니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더러운 이득을 탐하지 아니하며.

[벧전4:10]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답: 청지기는 그리스도의 일꾼이며 책망할 것이 없어야 하고 고집대로 하지 않고 선해야 한다. 그리고 맡은 일에 충성해야 한다. 

 

“하나님이 나에게 맡기신 모든 가능성과 에너지가 향상될 수 있도록 내가 성령께 마음을 열어야 하는가? 나는 그리스도의 소유이고 그분의 봉사를 위해 고용되었다. 나는 그분의 은혜의 청지기이다”(Fundamentals of Christian Education, 301).

또한 예수님은 눅 12:35~48에서 “청지기”라는 말을 은유적으로 사용하셨다. 그분은 인자가 돌아올 것을 예비하고 있는 현명한 청지기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불의한 청지기에 대해서는 주인의 도착이 지연되었다고 의무를 내팽개치는 자로 묘사하셨다. 그 불의한 청지기는 폭군처럼 변하여 자기 주변 사람들을 학대한다. 그는 더 이상 착한 행실 또는 은혜로운 관리자의 본이 되지 못한다.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우리는 그분의 청지기가 되어 하나님의 자원을 관리하도록 부름을 받는다. 그러나 하늘에 갈 때를 대비하여 우리의 삶에서 영적인 자원들을 관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부가설명> 매 과의 내용이 비슷하다. 부가설명을 꼭 쓸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청지기는 주인의 재물을 맡아 관리하는 사람인데 주인의 뜻을 알아서 바르고 충성스럽게 관리하여 주인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고 이를 남기도록 관리해야 하는 사람이라는 이야기이다. 그리스도인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청지기들이기 때문에 예수님께 충성을 다하고 예수께서 맡기신 재정을 예수님의 일을 위하여 올바르게 관리해서 많은 이익을 남겨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사람에게 주신 재물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한 유용한 도구이기 때문에 자기를 위하여 남용하지 않아야 하고 자기를 위하여 사용하는 것 까지도 바로 예수님을 위한 것이 되도록 하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자기 존재 자체가 예수님의 것이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위시하여 그가 가진 모든 것, 시간, 재능, 재물, 등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이기 때문에 오직 주님을 위하여 사용되어야 한다. 이것을 기억하고 이렇게 생활하면 선한 청지기 직무를 잘 감당하는 것이고 그날 주님께서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하실 것이다. 아멘.

 

교훈 : 성경이 가르치는 청지기 직분에는 주인의 소유를 관리할 뿐 아니라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하면서 하나님의 비밀과 은혜를 나타내야 할 영적인 사명도 있다.

 

 

1월 30일(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청지기들

 

“이는 그들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확실한 이해의 모든 풍성함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골 2:2~3).

 

1. 골 2:2~3과 딤전 3:16을 읽어 보라. 이 말씀들은 무엇을 “비밀”이라고 말하는가? 그것이 비밀이라는 사실은 그것에 대한 우리의 지식에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가?

[골2:2,3] 이는 그들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확실한 이 해의  모든 풍성함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  3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딤전3:16]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음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려지셨느니라.

 

답: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비밀이다. 비밀은 무엇에 대하여 완전히 다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알 수 없는 것이 감추어져 있다는 뜻이다. 예수님은 우리가 완전히 다 알 수 있는 분이 아니라는 것을 나타낸다. 

 

나아마 사람 소발은 욥에게 “네가 하나님의 오묘함을 어찌 능히 측량”(욥 11:7)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오묘함”이라는 말은 ‘수수께끼 같은’, ‘모호한’, ‘미지의’, ‘영문 모를’, ‘난해한’이라는 뜻을 내포한다. 하나님의 오묘하심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단지 우리의 지력으로 그것들을 다 이해할 수 없을 뿐이다. 그래서 그것들이 비밀이다. 그것은 마치 멀리 바라볼 수 없는 인간이 하늘을 보며 구석구석을 살피고 싶어 하는 것과 같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계시해 주시지 않는 이상 우리는 그렇게 멀리 내다볼 수 없다.

 

2. 신 29:29에 따르면 우리에게 무엇이 드러났는가?

[신29:29] 감추어진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나타난 일은 영원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나니 이는 우리에게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게 하심이니라.

 

답: 나타난 일은 우리가 연구해야 할 것인데 목적은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행하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을 맡은 청지기이다. 우리는 계시와 성경이 드러내 보여준 만큼만 이해할 수 있다. 우리가 지켜야 할 최고의 청지기 직분이란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고전 4:1) 사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의 청지기로서 그분이 우리에게 계시해 주신 거룩한 진리를 보존하고, 가르치며, 보호하고, 간수하기를 바라신다. 이 일을 어떻게 감당하느냐가 궁극적인 청지기 직분이며, 그것은 우리가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딤전 3:9) 한다는 뜻이다.

모든 것 중에 가장 큰 비밀은 우리가 ‘영광의 소망’이신 그리스도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구원의 계획은 초자연적인 것이며 온전히 이해하기 불가능한 것이다.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께서 이 땅에 내려오셔서 인간의 죄 때문에 자신을 희생 제물로 바치셨다는 사실은 그 어떤 피조물도 결코 온전히 이해하지 못할 오묘함을 담고 있다. 천사들조차 예수님이 왜 지구에 오셨는지를 알기 위해 연구한다(벧전 1:12).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는 그분의 영광과 선하심에 대해 주님을 찬양해야 한다(계 5:13 참고).

 

<부가설명>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청지기인데 하나님의 비밀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분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부요함이 감추어져 있다. 예수님을 연구하면 지혜와 지식의 모든 부요함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그분은 비밀이다. 우리가 알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뜻이다. 그분의 이름 중에 하나는 예수님 외에는 아는 자가 없다.(계19:12) 비밀은 진지하게 또 깨달을 수 있는 방법을 따라 연구하면 조금씩 조금씩 드러날 수 있다. 예수님이 바로 그런 비밀이다. 영원을 통하여 연구할 때 조금씩 조금씩 알 수 있겠지만 완전히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연구할수록 거룩한 지혜와 지식은 불어날 것이다. 비밀이라는 말은 ‘무스테리온’인데 이것은 옛날 밀교에서 사용하던 말이다. 그들이 이 단어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아는 것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비밀이라고 하신 말씀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는지 모른다. 그림을 그리면 이해가 쉽겠지만 여기 그렇게 할 수 없어서 예를 들어 글로 설명하면 중심점을 중심으로 원을 10개 그린다고 생각하자. 중심점에 가까운 원에서 점점 멀리 열 번 째 원을 그려서 열 번째 원 안과 밖을 생각하다. 열 번째 원 밖에 있는 사람에게 열 번째 원부터 중심점까지는 모두 비밀이다. 그러나 열 번째 원 안에 들어오면 열 번째 원은 그 사람에게 비밀이 아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9 번 원부터 중심까지는 비밀이다. 9번 원까지 온 사람은 10번 원과 9번 원은 비밀이 아니지만 8번 원부터 중심까지는 비밀이다. 그러나 중심까지 온 사람에게는 10 번 원부터 중심까지 모든 것이 비밀이 아니다. 비밀이라는 말을 이해하도록 설명했는지 모르겠다. 예수님은 그분 밖에 있는 사람에게는 완전히 비밀이다. 그러나 그분 안에 들어오는 사람들에게는 들어온 만큼은 비밀이 아니다. 그러나 아직도 그분의 중심까지 들어가지 못했다면 비밀이 훨씬 더 많다. 우리는 어디쯤 와 있는가? 영원토록 중심에 이르지 못할는지 모른다. 그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신데 사람이 되어 우리를 대신하여 죽어신 것을 우리가 어떻게 다 알겠는가? 다 모르기 때문에 믿고 감사하며 찬양하는 것이다. 할렐루야. 

 

교훈 : 하나님이 우리에게 위탁하신 것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구원의 소망이자 하나님의 비밀이고 그 안에 모든 보화를 가지고 계신 예수 그리스도시다.

 

 

1월 31일(수) 영적인 진리를 맡은 청지기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엡 6:13).

 

우리는 청지기에 대해 생각할 때에 유형의 것에 대해 생각하는데 그럴 만하다. 그러나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청지기 직분은 그 이상이다. 유형의 소유물처럼 무형의 선물들도 하나님께로부터 온다. 이러한 무형의 선물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영적인 소유물들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인다운 성품을 계발하며 그분의 백성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유형의 소유물보다 무형의 은사들을 더욱 조심스럽게 관리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더욱 무한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1. 엡 6:13~17을 읽어 보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주셔서 그것에 대해 우리가 청지기가 되도록 하셨는가? 왜 이러한 것들을 올바르게 관리하는 것이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가?

[엡6:13~17]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14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15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16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17 구원의 투구와 셩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답: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혀주셨다. 그것은 진리, 의, 복음, 믿음, 구원, 하나님의 말씀을 주셨다. 우리는 이것을 잘 차려입고 악한 자와 싸워야 한다. 승리는 예수께서 보장하셨다. 우리는 싸우면 된다.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 6:23). 이 세상과 그 안에 있는 그 무엇도 우리에게 속량을 제공하지 못한다. 속량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 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로서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소유이다. 이러한 속량 재산을 항상 염두에 두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다른 소유물에 대한 청지기 직분을 수행할 때도 균형을 유지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

“갈보리에서 비치는 빛에 의해서만 만상의 교훈은 바르게 읽혀진다. 베들레헴 십자가의 이야기를 통하여, 악을 정복하는 것이 얼마나 유익한 일이며, 우리에게 주신 모든 축복은 속죄의 선물임이 명백히 밝혀질 것이다”(교육, 101).

속량이 우리의 것이 되는 이유는 예수님이 최종적인 값을 치르셨기 때문이다. 바울은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엡 1:7)고 분명하게 진술했다.

“받았느니라”는 말은 우리가 속량을 이미 소유했다는 뜻이다. 단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에 그것은 우리의 것이 되었다. 그렇다면 악한 자가 와서 그것을 빼앗아 가지 않도록 우리가 항상 “하나님의 전신갑주”(엡 6:11)를 입는 것은 얼마나 중요하겠는가! 사탄은 우리가 그에게 허용할 때만 그렇게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일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엡 6:17)에서 계시된 것들을 순종하지 않을 때 발생할 것이다. 우리에게 가장 좋은 방화벽은 우리에게 주어진 빛을 믿음으로 순종하는 것이다.

 

<부가설명> 이 말씀에 열거한 것들은 영적 무기들이다. 이것을 다 갖추어 있는 것이 전신갑주이다. 로마서는 갑옷을 빛의 갑옷이라고 가르쳐준다.(롬13:12) 빛의 갑옷은 곧 영생의 생명의 갑옷이며 그것은 또한 예수님 자체이시다.(요1:4) 그래서 성경은 예수로 옷 입어라고 한다.(롬 13:14, 갈3:27) 그리스도인은 자기 안에 계시는 예수님을 잘 모셔야 한다. 예수님이 우리를 떠나시면 그들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이란 그 사람 안에 그리스도께서 거하시는 사람이다.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진리와 의와 화평과 구원과 믿음과 말씀 자체이시다. 예수님을 떠나게 되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고 그분 안에 있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것도 잃어버리는 것이다. 우리는 이 복음의 진리를 잘 지키고 증거해야 한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2:9) 속량(贖良)이나 구속(救贖)이나 같은 말이다. 헬라어 ‘루트로시스’를 구속, 또는 속량, 속죄 등으로 번역하였다. 예수께서 우리를 자기 피로 속량하셨기 때문에 자기의 생명을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 

 

교훈 : 속량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소유하도록 허락하신 선물로서 그것을 잃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빛을 따라 살아야 한다.

 

 

2월 1일(목) 우리의 청지기 책무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후 5:10).

 

현명한 청지기들의 특징은 개인적인 책임에 관한 도덕적인 원칙들을 수용하고 실행하는 자발성이다. 개인적인 책임에 대한 수용이란 우리가 정해야 할 선택이며 우리가 취해야 할 행동들이다. 그것은 원인과 결과의 관계를 인식한다. 개인적인 책임을 수용하는 자발성은 우리가 청지기란 무엇인지를 정의할 때에 무시할 수 없는 핵심 특성이다. 왜냐하면 청지기들은 오직 주인의 최고의 관심사에 마음을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자발성은 청지기가 하나님과 맺어야 할 바람직한 관계를 정의하는 선택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당신 자신과 직접적인 관계를 이루기를 바라신다. 인간을 취급하는 모든 일에 있어서 그분께서는 개인적으로 책임을 지는 원칙을 인정하신다. 그분은 개인적인 신뢰감을 고취시키고 개인적인 지도의 필요를 감명시키고자 하신다. 그분의 선물은 사람들에게 개인적으로 위탁된다. 각 사람은 신성한 책임을 맡은 청지기가 되었고, 각 사람은 주신 분의 지시대로 그의 책임을 완수해야 한다. 그러므로 각 사람은 그의 청지기 직분에 대한 계산을 하나님께 해야 한다”(교회증언 7권, 176).

우리가 청지기라면 우리는 우리의 책임을 다른 사람이나 어떤 단체에 떠넘기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개인적인 책임은 하나님께 대한 것이며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과의 모든 상호작용에 반영될 것이다(창 39:9, 단 3:16 참고). 우리는 그 임무를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에서 성공은 우리의 지능이나 재능보다는 우리의 믿음과 순수성에 더욱 좌우될 것이다.

 

1. 고후 5:10을 읽어 보라. 현명한 청지기가 된다는 것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한 맥락에서 우리는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고후5: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답: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선악간에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판결 받게 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바르게 행하므로 잘 했다고 칭찬받는 청지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신학자들과 철학자들은 자유 의지라는 난제에 관하여 오랫동안 논쟁해왔다. 그러나 성경의 입장은 명확하다. 인간은 자유의지와 선택의 자유가 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는다는 개념은 이치에 맞지 않게 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행위에 대하여 바른 결정을 선택할 개인적인 책임이 있으며 그것은 우리 주인의 모든 소유물에 대하여 신실한 청지기가 되는 것도 포함한다.

 

<부가설명> 선악간에 몸으로 행한다는 말씀을 도덕적 관점으로 이해하면 성경의 복음을 곡해할 우려가 있다. 선은 생명을 주는 것이고 악은 생명을 빼앗는 것이다. 마가복음 3:4을 읽어보자. “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니 그들이 잠잠하거늘” 이 말씀에 선을 행하는 것은 생명을 구하는 것이고 악을 행하는 것은 생명을 죽이는 것이라고 가르쳐주셨다. 그러므로 선악간에 행하는 선은 예수 안에서 주신 생명을 받고 다른 사람에게도 이 생명을 얻게 하는 것이고 악은 예수 안에서 주시는 생명을 거절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이 생명을 나누지도 않고 방해하는 것이다. 아무리 도덕적으로 성인의 경지에 있다 해도 이 생명을 거절하면 몸으로 악을 행하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일을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을 때 하나님이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라고 대답하셨다.(요6:28,29) 예수를 믿는 것은 몸으로 선을 행하는 것이고 예수를 믿지 않는 것은 몸으로 악을 행하는 것이다. 성경은 사람들에게 자유가 없다고 했는데 신학과 철학은 사람들에게 자유의지가 있다고 가르치고 자유선택이 있다고 가르친다. 이 교과도 그렇게 가르치고 있다. 교과 저자의 말대로 자유의지와 자유선택이 없으면 선악간에 심판을 받는다는 것이 모순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세상의 도덕을 기준으로 하는 설명이다. 예수께서는 진리이신 예수님이 자유를 주지 않으면 자유가 없다고 하셨다.(요8:32~36) 그런데 목회자들이나 신학자들이 다 사람에게 자유의지가 있다 하고 자유선택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예수님을 받든지 거절하든지 하는 자유선택밖에 다른 자유가 없다. 이미 죄의 종이다. 죄의 종이 된 것은 자기의 선택이 아니다. 아담 안에서 본질상 그렇게 되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셔서 구원을 이루셨기 때문에 우리는 이 본질을 거부하고 예수님을 믿을 수 있다. 이것뿐이다. 이것을 바르게 이해할 때 도덕이 말하는 자유의지론을 올바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네가 원 돌감람나무에서 찍힘을 받고 본성을 거슬러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았으니”(롬11:24), 이것은 주께서 하신다. 우리는 항상 수동적이다. 자유의지, 자유선택 잘 생각해야 하지 않겠는가.

 

교훈 : 진정한 청지기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책임을 자발적으로 수용하고 지능이나 재능보다 믿음으로 그 책임을 완수한다.

 

 

2월 2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구약 성경의 몇 군데에서 ‘청지기’라고 번역된 말은 한 단어가 아니라 ‘한 집을 돌보는 사람’이라는 뜻의 ‘아셰르 알 바이트’라는 어구이다. 예를 들어 창 43:19은 이렇게 번역된다. “그들이 요셉의 집 청지기에게 가까이 나아가 그 집 문 앞에서 그에게 말하여”(창 43:19). 만약 어떤 사람이 그 집에 거주하는 가족을 집의 중요한 일부로 간주한다면 그 사람에게 자신의 집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따라서 청지기는 매우 가치 있는, 그러나 자신에게 속하지 않은 어떤 것을 위탁받은 사람이다. 그래서 청지기의 책임은 여러 면에서 그가 자신의 소유만 관리할 때 져야 할 책임보다 훨씬 크다.

이와 동일한 사상은 신약 성경에서도 계속된다. “신약 성경은 구약 성경의 사상들을 취해서 1세기 사상들, 개념들, 언어들과 결합시킴으로 청지기 직분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풍성하게 확장시킨다. 청지기에 관련하여 사용된 가장 평범한 그리스어 ‘오이코노미아’는 ‘집’이라는 뜻의 ‘오이코스’ 또는 ‘오이키아’에서 유래한다. ‘오이코노모스’는 집을 지키는 청지기 또는 관리자를 의미한다. ‘오이코노미아’는 ‘가옥 관리’를 뜻하는 추상명사로서 그 의미는 대개 훨씬 폭넓다.”—Handbook of Seventh-day Adventist Theology (Hagerstown, Md.: Review and Herald Publishing Association, 2000), p. 653.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금지된 열매를 먹은 책임을 지는 대신 아담은 무엇을 했냐는 하나님의 질문에 어떻게 대답했습니까?(창 3:12) 죄로 인해 야기된 인간 최초의 반응 중 하나가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려는 것이었다니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그의 대답에 따르면 아담은 자신의 행위에 대한 개인적인 책임을 수행하려는 자발성이 있었습니까? 그런 면에서 우리 자신은 어떻습니까? 어떻게 하면 우리가 자신의 실수에 대한 비난의 화살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려는 태도를 버릴 수 있을까요?

※ 아담은 그의 아내에게 책임을 돌렸다. 우리도 그런 경향이 강하다. 예수 안에서 자아가 죽고 예수님 정신을 가지면 될 것이다.

 

➋ 유형뿐 아니라 무형의 소유에 대해서 청지기가 되어야 한다는 개념을 더 묵상해 보십시오. 그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우리는 그러한 것들을 어떻게 ‘관리’해야 합니까?

※ 영적 삶에 대한 것이다. 말씀과 기도와 전도와 봉사로 관리해야 한다.

 

➌ 계 14:6~12에 나오는 세 천사의 기별에 대해 생각해 보십시오. 이 말씀은 청지기로서 우리가 수용해야 할 책임에 대하여 어떤 중요한 진리들을 설명하고 있습니까?

※ 이 시대에 이 영원한 복음을 전파하는 책임을 즐겨 감당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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