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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마음을 드린 사람들(P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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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식일학교 작성일10-02-25 08:40 조회6,30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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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제안순서 ① 하나님께 마음을 드린 사람들


◈ 주제 : 하나님께 마음을 드린 사람들의 삶을 돌아보고 재헌신의 기회를 가진다.
◈ 준비물 : 안식일학교 홈페이지의 파워포인트 자료를 이용한다.

◈ 진행방법 : 순서자가 조지 킹과 애니 스미스, 존 러프버로우의 생애를 여러 번 숙지한 후 실감나게 들려주거나 적절하게 분장한 사람들을 직접 등장시켜 자신의 이야기처럼 진행해도 좋다. 애니 스미스가 작곡한 찬미들을 곁들이면 효과적이다.

◈ 순서자료
1) 특이한 선교사 조지 킹 : 조지 킹은 목사가 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는 설교할 능력이 없었다. 말을 더듬으며 교육을 별로 받지 못한 그를 제임스 화잇은 목사 감으로 보지 않았다. 그러나 엘렌 화잇은 모성애 때문인지 배틀크릭 근교의 리차드 갓즈마크(Godsmark)라는 농부에게 부탁하여 겨울 동안 그에게 숙식을 제공하도록 주선하였다. 봄이 오면 시험적으로 일을 시켜볼 생각 때문이었다.
갓즈마크 씨의 격려로 젊은 킹은 시간이 있을 때마다 거실의 빈 의자들을 상대로 설교를 연습하였다. 그러던 중 공중 앞에서 설교를 해볼 기회가 왔다. 결과는 그야말로 재난이었다. 그때 갓즈마크 씨는 그에게 좀 색다른 전도자가 되고 싶은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다. 가가호호를 방문하며 서적을 판매하는 일을 제안한 것이었다. 그래서 킹은 작은 책자들과 <시조> 지의 구매를 권장하는 문서 전도 일을 시작하였다. 그는 첫 주에 총 매상 62센트를 올렸다. 변변치 않은 실적이었으나 그는 그 일이 마음에 들었다.
한편, 복음을 크게 외치는 것이 소원이었던 이 문서 전도인은 세 천사의 기별을 전부 서적으로 만들어 사람들 앞에 제시하고 싶었다. 그래서 1880년 가을 그는 배틀크릭의 재림교회 출판소 총무를 찾아가서 유라이어 스미스의 다니엘과 요한 계시록에 관한 책들을 한 권으로 묶어 판매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설득하였다. 만일 그런 책에 짐승들과 기타 상징물들의 그림들이 삽입된다면 책이 잘 팔릴 것을 그는 확신한 때문이었다.
총무는 반신반의했지만 우선 몇 권을 그렇게 만들어주었다. 킹의 성공은 모든 사람을 놀라게 하였다. 그 이듬해 출판소는 삽화들이 멋지게 들어간 다니엘과 요한계시록 합본을 찍어내기 시작하였다. 킹의 대대적인 성공과 그의 열성적인 모집 능력에 힘입어 판매원 수가 불어나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문서 전도인이란 새로운 재림신도의 직종이 생겨났다.
문서 전도는 하나님의 마지막 기별을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는 또 하나의 방법으로 등장하였다. 사람들은 책을 사서 읽고 교회로 들어왔다. 하나님께서 이사야에게 하신 약속이 진정으로 성취되고 있었다. 하나님이 비를 내려 곡식이 자라고 땅에 사는 사람들이 먹고 살게 해주시는 것처럼, 인쇄된 말씀은 세상으로 나가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을 변화시켰다. 내가 구입한 최초의 기독교 서적은 문서 전도인으로부터 구입한 서적이었다.
조지 킹의 이야기가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우리가 설교할 능력이 없다고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를 사용하실 수 없는 것은 아니다.

2) 애니 스미스의 인생 : 어제 우리는 애니 스미스가 개심하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애니는 얼마 후 1851년 11월호 <리뷰 앤드 헤럴드> 지에 다음과 같이 기고하였다. “나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주님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기로 작정하였다. 이 땅은 더 이상 매력이 없어졌다. 나의 소망과 기쁨과 애정은 모두 하늘에 있는 신성한 것에 집중되어 있다. 나는 예수님 발 아래 앉아 그분을 배우는 것 외에는 관심이 없고, 나의 하늘 아버지에게 수종 드는 것 외에는 다른 일이 없으며, 모든 지각을 뛰어넘는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 외에는 다른 기쁨이 없다.”
“오! 나는 그분의 이름을 칭송하노니 그분이 나를 위하여 베푸셨음이라. 나는 저 하늘의 영광을 맛보았으며, 그 기업을 사모하고 그의 은혜로 인하여 모든 장애를 극복하고 십자가를 지며 모욕을 참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왕국에 들어가기를 소망하노라.”
당시만 해도 일류 중등학교에서 교편을 잡는 것이 애니의 꿈이었고 야망이었다. 사실 개심하기 얼마 전에 그녀는 높은 연봉을 약속하는 좋은 자리를 제의받았다. 다시 말하면, 1851년에 그녀는 자신이 이 땅에서 바라는 모든 것을 얻은 것이다.
그러나 조셉 베이츠로부터 재림 기별을 받아들이고 난 후, 그녀의 모든 야망이 바뀌고 말았다. 그녀는, 제임스 화잇이 <리뷰> 지를 편집하는 일에 조력자가 필요하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자원하여 봉급도 받지 않고 숙식만 제공받으며 봉사하기로 하였다. 그녀는 하나님의 사업에 참여하여 다른 사람에게 하나님 왕국의 기별을 전할 수 있게 되어 더없이 기뻤다.
그녀는 제임스 화잇과 3년간 일하였으나, 1855년 27세의 나이에 폐결핵에 걸려 생을 마감하였다. 죽기 전날 그녀는 자신이 지은 “이 땅의 집과 하늘 집”이란 시의 서문을 썼는데, 그녀는 이 땅에서 하나님이 자신에게 허락한 사역에 대하여, 그리고 자신의 인생을 “마감할 때” 하늘을 우러러 볼 수 있게 해 준 사실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하였다.
애니는 단명하였지만, 그녀의 감화는 남아 있었다. 특히, 그녀가 남긴 찬미가는 아직도 애송되며, 그녀의 남동생 유라이어는 누나 덕분에 1852년 말 주님께 돌아왔다.

3) 소년 설교자 존 러프버로우 : 자신이 설교자로 부르심 받았다고 느꼈을 때, 존 러프버로우(1832-1924)는 16세였다. 9주 동안이나 말라리아에 걸려 고통을 당하다가 그는 절망 가운데서 주님께 부르짖었다. “주여, 이 오한(惡寒)을 물리쳐 주세요. 제가 웬만큼만 회복되면 즉시 복음을 전하러 나가겠습니다.”
오한은 그 날로 사라졌다. 그러나 여비가 한 푼도 없었다. 몇 주 동안 장작을 패서 저축한 돈이 경비를 빼고 1달러가 수중에 남았다. 그는 이렇게 기록하였다. “이 돈이면 내가 가고 싶은 데로 갈 수는 있겠는데, 옷은 어쩌지? 나의 도움을 받은 이웃이 나에게 조끼 한 벌과 바지 한 벌을 주었다. 헌 옷이었다. 그러나 그는 나보다 체격이 훨씬 큰 사람이었다. 바지를 7인치 줄여서 입었더니 매무새가 말이 아니었다. 상의가 없어, 형이 준 더블브레스트 오버코트의 아랫부분을 뚝 잘라 버리고, 그것을 상의 대신 입기로 했다.”
“이런 야릇한 행색으로 1달러를 가지고 어디론가 나를 아는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서 복음을 전할 생각이었다. 만일 실패한다 해도 친구들이 모를 것이고, 만일 성공하면 그것을 설교자가 되라는 증거로 삼기로 했다.”
그가 첫날 밤 나가 보니 어떤 마을의 작은 침례교회에 사람들로 가득 찼다. “나는 찬송을 부르고 기도하고 또 찬송을 불렀다. 나는 인간의 타락에 관하여 이야기하였다. 두려워했던 것과는 달리 나는 당황하지 않았으며, 하나님의 축복이 내게 임하여 나는 거침없이 설교하였다. 다음 날 아침에 들으니 바로 전날 밤 청중 가운데 목사가 일곱 명이나 앉아 있었다고 한다.”
“그 다음날 저녁 집회장은 다시 청중들로 꽉 찼다. 아마 그들은 수염도 나지 않은 어린 소년이 전도하러 왔다니 호기심 때문에 들으러 왔던 것이 아닐까 한다.… 내 설교가 끝나자 목사가 일어나 내일 저녁에는 찬양반 예배가 시작되므로 내 집회는 끝내야 한다고 하였다. 그랬더니 톰슨이란 분이 일어나, ‘러프버로우 씨, 이 찬양 학교는 당신의 집회를 끝내기 위해 꾸며낸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 자리에서 톰슨은 자기가 관리인으로 있는 큼직한 학교 건물이 있으니 그 곳으로 장소를 옮겨서 집회를 계속하자며 이 풋내기 설교자를 초청하였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제일일 재림신자인 풋내기 설교자는, 모험심이 부족한 영혼이라면 실패하였을 장소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가장 보잘것없는 제물이지만 헌신하고 바칠 때 은혜의 하나님께서 얼마나 축복을 하시는지 나는 한없이 놀라고 또 놀란다. 우리 중 대부분은 “준비가 덜 되었다”는 이유로 기회를 허송한다. 그런 사람에게 “완벽한 준비”는 결코 오지 않는다.

4) J. N. 러프버로우와 J. N. 앤드루즈의 만남 : 러프버로우는 일요일 준수 재림신자로 약 3년 반 동안 말씀을 전하다가 제칠일을 지키는 전도자를 처음 만났다. 제칠일 재림신자들은 그때까지 밀러주의 사람들 사이에서 소위 ‘닫힌문파’라는 광신적인 무리로 알려져 있었다. 사람들은 러프버로우에게 그가 만나러 가는 무리는 일요일 대신 토요일을 지키며 “집회로 모일 때 시끄럽게 괴성을 지르며 미친 듯이 소동을 부린다.”고 일러주었다.
러프버로우는 그런 사람들을 만나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었다. 그러나 뉴욕 주 로체스터에서 온 오턴(Orton)이란 사람이 그를 붙잡더니, “제칠일 재림신자들이 마운트 호프 124번지에서 집회를 하는 모양이니 가보자.”고 제안하였다.
러프버로우는 처음에는 그 초청을 거절하였다. 그러나 오턴은 말하기를 “당신은 거기서 할 일이 있소. 당신의 양떼 일부가 안식일 재림신도 무리에 가담하였으니 당신이 가서 그들을 그 이단으로부터 구출해야 하오. 그 집회에서 당신에게 말할 기회를 줄 것이니 성경 말씀을 준비하시오. 단 2분이면 안식일이 폐지되었음을 증명할 수 있을 거요.”
러프버로우는 그 도전이 귓가에 맴도는 것을 느끼며 “성경 구절들을 챙겨 가지고” 몇몇 제일일 재림신도 친구들과 함께 안식일 준수자들의 집회에 참석하였다.
거기서 청년 전도자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그 모임에는 광신적이고 시끄러운 소란이 없을 뿐더러 J. N. 앤드루즈란 목사가 나서서 러프버로우가 준비해간 안식일과 법에 관한 바로 그 성경 구절들을 하나하나 읽고 설명하는 것이었다. 러프버로우에 의하면, 앤드루즈의 성구들은 그 순서까지 자기가 준비해 가지고 갔던 것과 정확히 일치하였다. 거기에 질린 러프버로우는 1852년 9월 안식일을 받아들이고 즉시 안식일 준수 재림신도들을 위한 설교를 시작하였다.
그는 후일 캘리포니아와 영국의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개척에 헌신하였고, 미국의 몇몇 지방에서 목사와 행정자로 일하였으며, 1892년에는 최초의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역사를 출판하였다.(<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의 태동과 발전, The Rise and Progress of Seventh-day Adventists>, 1905년에 <위대한 재림 운동, The Great Second Advent Movement>으로 개정됨)
엘렌 화잇은 하나님께 자기의 삶을 바친 사람의 유용성에는 끝이 없다고 말했거니와, J. N. 러프버로우야 말로 그런 사람이었다. 우리 각 사람의 삶도 그렇게 될 수 있다.
-참고자료 : 어찌 우리 잊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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