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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제2기 4과 사회적인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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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광진 작성일17-04-18 11:05 조회2,64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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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교할동반 시간>

 

*반장은 반원들이 한주일 동안 TMI를 실천한 사항들을 나누도록 하며, 계속 실천하도록 장려한다. 

 

<핵심>

 

그리스도인은 사회의 제도와 질서에 복종하되, 그보다 먼저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한다. 

*핵심어 : 복종

 

<토의 및 탐구를 위한 질문>

 

☆도입 : 세상을 떠나고 싶을 때가 있다면? 

⇒사람들과 세상의 틀 속에 사는 것이 너무 힘들 때 세상을 떠나 혼자 살고 싶을 수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빛으로 부름받았다. 세상에 빛이 되려면 세상 속에 존재해야 한다. 그 세상이 나의 길을 방해하고 답답하게 할지라도 거기에 반드시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 그런 상황에서도 선한 감화로써 복음을 증거할 수 있다. 

 

1. 교회는 세상의 불의한 통치자나 정부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2. 그리스도인들은 불의한 법과 제도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2-1.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악법은 어떤 것이 있으며, 이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3. 그리스도인 여성들은 불신자 남편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4. 롬 13:1의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말씀은 모든 불의한 권력에도 해당되는가?

4-1. 그리스도인은 불의한 세상에서도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

4-2. 갈 3:27~29은 그리스도인이 사회적으로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야 할 어떤 중요한 이유를 말하고 있는가?

 

5. 그리스도인들은 모범적인 시민이어야 하지만, 어떤 경우엔 세속권력의 명령을 거부해야 하는가? 

 

<적용, 결심>

 

☆이번 과를 통해서 배운 교훈은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적용하겠는가?

 

<답을 위한 도움>

 

1. 「국가 당국에 대한 우리의 태도 - “우리는 반역을 주장하는 것처럼 오해받는 방법으로 일하지 말 것이다. 우리는 모든 글과 말에서 법률과 질서를 대적하는 것처럼 보이는 모든 표현들을 제거해 버려야 한다. 우리가 국가와 법률에 불충성을 조장하는 자들로 기록되지 않도록 범사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증언보감 3권, 45).」

 

교회는 세상의 질서를 존중한다. 불의를 옹호하진 않을지라도 불의한 권력의 통치자체를 거부해선 안된다. 

 

2.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다”라고 했다. 그러나 현대의 민주시민들의 생각은 조금 다른 것 같다. 그리스도인은 여기서 딜레마에 빠진다. 어쩌면 그리스도인에게는 부당한 제도나 불의한 사람에게 억울함을 당할 때 그리스도의 품성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요셉은 노예로 팔려갔으나 온유함과 신실함으로 그 주인에게 충성하여 하나님을 증거했다. 

 

「우리는 초기 그리스도인의 상당수가 노예였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스스로 변화시킬 수 없는 제도에 갇혀 있었다. 게다가 잔인하고 부당한 주인 밑에 있는 불운한 자들은 특별히 더 어려운 여건 가운데 있었다...

그들은 그리스도처럼 순종하고 견뎌야 한다(벧전 2:18~20)... 그러나 진정한 그리스도의 정신은 부당하게 고난을 당할 때에 나타나는 법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 악법에 의해 억울함을 당하는 이웃을 위해선 악법을 폐지할 수 있도록 자기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3. 일단 결혼으로 맺어진 관계는 상대방이 불신자라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불신자 배우자가 이혼을 강력하게 요구하거나 신앙을 핍박한다면 달리 생각할 수 있다. 

불신자 배우자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먼저 믿은 자로서 그리스도의 품성을 나타냄으로써 상대방을 구원할 수 있는 축복을 누릴 수 있다. 

하나님은 할수만 있다면 결혼관계가 원만하게 유지되기를 바라신다.

그러나 미혼자인 경우 불신자와 결혼하는 것은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고후 6:14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4. 하나님이 불의한 권력을 세우는 것은 당신의 뜻이 아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허락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경우에도 ‘하나님이 세우셨다’고 한다.

<부록> 참조

 

4-1. 「즉 바울은 기꺼이 법이 허용하는 문화의 테두리 안에서 일하였다. 그는 자신의 시 대에 무엇이 바뀔 수 있고 무엇이 바뀌지 않을지를 이해했다. 그러나 그는 기독교 신앙 안에 인간에 대한 사회적인 통념을 변화시킬 수 있는 잠재력이 있음을 보았다. 단지 예 수님이 사회 질서를 바꾸기 위해서 어떤 종류의 정치적인 혁명도 일으키려고 하지 않 으셨던 것처럼 베드로나 바울도 그 길을 따랐다. 하지만 그 사회의 경건한 백성들이 그 들의 감화를 증폭시킬 때에 변화는 이르러 올 것이었다.」

 

4-2.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을 인정하는 사람은 다른 어떤 사람도 한 가족으로 인정해야 한다. 그렇다면 그들이 잘못한다고 해서 증오하고 멀리할 수만은 없는 것이다. 

*갈 3: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5. 비록 그것이 법으로 정해진 것이라도 하나님의 말씀과 모순된다면 그것을 거부하고 하나님 말씀을 따라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단지 안식일을 지키는 것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신앙양심만 지키기 위해 애쓸 것이 아니라,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 같이 하라는 최고의 법에 따라, 이웃이 억울한 일을 당한다면 당연히 그들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기도하고 사회적인 노력도 기울여야 한다. 약자들이 권리를 정당하게 누리도록 ‘커다한 사회 악에 대항하여’ 그들편에서 지지해주는 일도 필요하다. 

 

<부록>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권력을 어떻게 이해하고 대해야 하는가?  

 

수요일 소지의 ‘문화’라는 말을 주목하라. 바울과 제자들은 당시의 문화라는 테두리 안에서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살아야 할것인지를 고민했다. ‘문화’란 사회구성원들에 의해 공유된 가치관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중세시대까지만 하더라도 왕은 절대권력자라는 사상이 문화적 흐름이었다. 그런 문화에서는 아무리 악한 통치자라도 하나님이 세우신 거스릴 수 없는 권력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이 악한 통치자를 세우셨다기보다 백성들의 요구나 수준에 맞게 어쩔 수 없이 ‘허락’하셨음을 보여준다. 사울왕의 경우를 예로 들면,

*삼상 10:24 “여호와의 택하신 자”(이 표현대로라면, 하나님이 사울을 왕으로 택하셨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삼상 8:18 “너희가 너희 택한 왕”을 인하여 부르짖되... 응답지 아니하시리라(여기선 하나님이 사울을 택하기 전에 백성들이 택하였음을 보여준다.)

이 말씀을 비교해 보면, 하나님은 사울을 왕으로 세우길 원치 않으셨음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왕이라는 제도 자체를 원치 않으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이 집요하게 왕을 요구했고 사울 같이 출중한 외모를 가진 왕을 바랐기에 하나님은 마음이 아프지만 백성들의 요구를 허락하셨을 뿐이다.

“하나님은 그분 자신이 승인하지 않는 것을 사람에게 갖도록 허락하는 일이 자주 있다.”(삼상 8:18에 대한 SDA주석)

 

오늘날과 같이, 절대왕정제도가 아닌 민주적인 절차에 의해 국민이 권력자를 선출하는 경우에는 더욱이 하나님의 뜻과 어긋나는 지도자가 세워질 수 있기에, 투표할 때 책임감을 가지고 참여할 뿐 아니라, 민주시민으로서 법과 제도 안에서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본다.(이는, 교회의 지도자에게도 마찬가지다) 이것은 중세 이전에는 용인될 수 없었던 현대의 문화이다. 

 

로마시대에는 노예제도가 전혀 이상하지 않은 문화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조차도 오랫동안 노예제도를 유지해왔다. 그 시대의 사람들은 그것이 인권을 침해하는 중대한 범죄라는 인식이 거의 없었다. 그러므로 노예제도를 공격하는 것은 정당한 법과 사회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반사회적 행동이었다. 하나님도 그것은 불의이지만 그들의 수준에서 묵인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노예제도 자체를 인정한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그러나 사람들의 사상이 개화되면서 노예제도에 대한 가치관에 변화가 일어났고, 미국의 링컨 시대에는 노예제도가 잘못이라는 사상이 상당히 문화적으로 수용되고 있었다. 화잇부인은 이런 이해를 바탕으로 노예제도를 강력하게 배척했다.

 

「“인간의 법률이 하나님의 말씀과 율법에 어긋날 때, 우리는 어떤 결과가 올지라도 후자에 순종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법률은 노예를 그 주인에게 넘겨주도록 요구하지만, 우리는 순종하지 말아야 하며, 이 법을 범한 결과도 감당해야 한다. 노예는 어떤 사람의 소유도 아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정당한 주인이시므로, 사람이 하나님의 피조물을 그의 손에 넣고 자기의 것이라고 주장할 권리가 없다”(교회증언 1권, 201~202).」(금요일 소지)

노예제도에 순종하지 말라고 하는 주장은 로마시대 문화에서는 용인될 수 없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좀더 진보된 문화에서는 이런 주장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그리스도인은 그 시대와 그 사회의 문화를 이해하고 수용하며 그 안에서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행하는 동시에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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